드래곤퀘스트는 RPG에 대한 역풍 속에서 탄생했다――“드퀘 이전”의 일본 RPG 역사를 통해서 보는 고난의 역사 게임S/W관련


 『드래곤퀘스트』(에닉스・1986)는 어떻게 탄생했나? 그에 대한 대략적인 모범 답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一첫 번째는 「『위저드리』(Sir-Tech・1981)와 『울티마』(오리진・1981)의  “뛰어난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모두 1981년에 발매된 해외 컴퓨터 RPG(이하 CRPG)다. 위저드리에서는 적 몬스터와 대면해서 커맨드를 선택하는 턴제 전투를, 울티마에서는 탑 뷰 시점에서 광대한 세계를 여행하는 탐색을 도입한 “혼합형”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해설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 않는다.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크게 히트했으며 그 후에도 시리즈가 계속 나온 메이저한 작품으로 다른 게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게임 업계 전체를 흔들었으며 그 여파를 받지 않은 게임이 오히려 적을 정도다.  
 실제로 드퀘에 앞서 위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가졌고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지만 게임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기지 못한 소프트도 있었다. 양대 CRPG의 유전자를 계승한 수많은 게임 중에서 드퀘는 어떻게 부각되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위해서는 당시의 드퀘를 둘러싼 CRPG 시장과 그에 도달한 역사도 함께 고찰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답안은 「호리이 유지 씨나 나카무라 코이치 씨토리야마 아카라 씨, 스기야마 코이치 씨 등 여러 능력자가 모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이것도 충분치는 않다. 천재의 집합은 빼놓을 수 없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드림팀으로 기대를 받았던 프로제트가 스태프들 간의 개성이 충돌하여 실패하는 사례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체 드퀘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결론을 말하자면 드퀘는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좋은 점을 도입했다」가 아니고 오히려  『위저드리』와 『울티마』를 「잘 편집했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만화편집자 경력을 가진 호리이 유지 씨의 경력이 영향을 주었음은 자명하다. 

 본 연재에서는 우선 초대 드퀘가 어떻게 탄생했나를 검증한다.  이번 1회에서는 CRPG가 걸어온 시간 속에서 초대 드퀘에 이르는 길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변천했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주로 미국의 많은 능력자들이 재능을 발휘하여 CRPG를 통해 발전한 상상력과 게임 시스템이 일본의 패미컴 게임에 계승되기 직전까지를 검증하겠다. 

「D&D」에서 탄생한 CRPG

 현재 일본에서 「검과 마법의 판타지」가 게임뿐 아니라 라이트노벨에서도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현상은 드퀘가 대성공하면서 하나의 스탠다드가 된 덕분일 것이다.  
 그럼 드퀘는 「검과 마법」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앞서 언급한 『위저드리』와 『울티마』로부터 왔다, 라는 사실은 호리이 씨 인터뷰 외에 작품의 탄생에 공헌한 토리시마 카즈히코 씨의 증언으로도 뒷받침된다. 

토리시마 씨:
 먼저 나카무라 씨와 호리이 씨가 팀을 이룬다는 것만 정해졌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 사이 유행했던 『위저드리』나 『울티마』같은 RPG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하지만 아까 말했지만 『위저드리』는 세계관이나 전투는 재미있지만 필드나 던전은 단조로워서 별로였습니다. 반대로 『울티마』는 전투는 재미없지만 필드나 던전은 재미있었어요. 이건 함께 밤을 새며 즐겼던 호리이 씨도 동의하는 바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좋은 점을 갖고옵시다」라고 확인했더니 그분들도 「저도 그럴 작정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결국 저는 편집으로 움직이기만 했습니다. 

 

【全文公開】伝説の漫画編集者マシリトはゲーム業界でも偉人だった! 鳥嶋和彦が語る「DQ」「FF」「クロノ・トリガー」誕生秘話より引用

 그런데 이 두 게임의 원류를 거슬러올라가면 동일한 한 작품에 도달한다. 『던전&드래곤』(이하 D&D )(Tactical Studies Rules・1974)——현존하는 모든 컴퓨터 RPG의 시조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불문하고  「판타지 유희」가 널리 진화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한 근본적인 “씨앗“과 같은 존재다. 

『Dungeons&Dragons』(Wikipedia)より

 1974년에 탄생한 D&D는 원조 테이블토크 RPG——인간 플레이어끼리 모여 게임 마스터의 사회와 진행 아래 시나리오를 즐기는 보드 게임이다. 그 원점은 1950년대~197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유행했던 워게임. 종이 보드 위에 말을 놓고 즐기는 전쟁 보드 게임이다. 
  TRPG 업체 중 하나였던 TSR은 1971년에 『체인메일』(Tactical Studies Rules・1971)이라는 중세 유럽을 무대로 한 워게임을 발매했다. 이전 제품과의 주된 차이는 유닛을 「부대」에서 「개인」으로 바꾼 점이었다. 그에 부속된 판타지 설정인 지하미궁이나 성의 탐색 등의 시나리오를 즐겨보니 이게 재미있었다. 이윽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다」하는 내용을 추가한 결과, 완전히 판타지 설정으로 수정되어 D&D가 발매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게임 마스터 1명이 진행자 역할을 맡고 여러 플레이어가 역할을 연기한다ーー라는 테이블 토크 RPG의 기본 형식은 전투에 특화된 『체인메일』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D&D는 탄생과 동시에 게임 마스터를 통해서 「이야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D&D는 그 후 크게 성공하여 청소년에게 나쁜 역향을 준다는 사회적 눈총을 받다가 미국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시작의 조짐이 있었던 컴퓨터 게임 창작의 움직임과 합류했다. 『위저드리』나 『울티마』의 장르 명칭인 CRPG란 대충 요약하면 여러 명이 모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D&D」로 「컴퓨터로 즐길 수 있는 테이블 토크 RPG」인 것이다. D&D는 수많은 CRPG의 마중물이 되었다.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탄생

 D&D의 후손들이 발전하는 가운데 1981년은 큰 전기가 찾아온 해였다. 드퀘의 원형인 양대 CRPG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발매된 것이다. 
 두 게임 외에도 뛰어난 CRPG는 있었지만 「상용 게임」으로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학술기관이나 지인 서클이란 범위 내에서만 플레이한 게임은 바다 건너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법이다.   

 호리이 유지 씨가 열심히 즐겼던  『위저드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우드헤드 씨도 PLATO(미국의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상에서 실행되던 짐 슈바이거라는 개인이 제작한 『우블리엣(Oubliette)(1977)이란 CRPG에 빠졌다. 

 이 게임은 3D 1인칭 시점에서 던전을 탐색하거나 다른 직업을 조합해 파티를 편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ーー『위저드리』는 일부 사람들이 독점했던 『우블리엣』이란 CRPG의 재미를 개인용 PC인 AppleII로 “이식”한 것이다. 낮은 스펙의 당시 PC로 대형 시스템의 게임을 가능하도록 재현한 기술은 물론 위대한 업적이다. 

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Wikipedia)より

 『위저드리』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요소는 역시 一1인칭 시점(화면 상에 자기 캐릭터가 없다)으로 탐색하는 3D 던전일 것이다. 상대편 적도 「정면에서 마주치게」 되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 모습이 표시된다. 방금 전까지는 낌새도 없던 마물이 갑자기 나타나는 랜덤 인카운트도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모험은 혼자가 아니라 6명까지 파티를 짠다. 캐릭터는 전사・마법사・승려・도적 등의 「직업」과 인간・엘프・드워프 등 「종족」과 조합되며 종족에 따라 맞는 직업, 그렇지 않은 직업이 있다. 선・악・중립이라는 「속성」도 있어 선과 악은 같은 파티로 편성할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선 또는 악이 요구되는 직업도 있어 고민 거리였다. 
 또한 마법 시스템에도 독자적인 문화가 숨쉰다. HALITO(1개체 공격)/MAHALITO(그룹 대상 공격)이나 DIAL(1개체 회복)/DIALKO(마비 회복) 등 동일한 체계의 마법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한다. 이것은 드퀘의 「호이미→베호이미」 등 주문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울티마』는 발상의 원점부터 개발자인 리차드 게리엇 씨가 거의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개리엇 소년이 만든 게임 「D&D #1」이다. 개리엇 소년은 그 후 AppleII로 환경을 옮겨 버전업을 거듭해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79년에 CRPG 『아칼라베스』를 완성시켜 3만 장의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것을 더 가다듬은 제품이  『울티마 1』이다. 

Ultima I: The First Age of Darkness(Wikipedia)より

  『울티마 1』이 나중에 등장한 CRPG에 영향을 미친 특징은  탑 뷰 화면의 광대한 2D 맵이다. 인도어(지하)인 『워저드리』에 비해 『울티마』는 아웃도어였다. 1칸이 산 1개에 해당하는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므로 걸을 때마다 식량을 소비한다. 이렇게 굶어죽는 일이 게임오버로 이어지는 사양과 2D 맵과 함께 따라서 적용한 CRPG도 적지 않다. 
 『울티마』의 2D 맵과 『위저드리』의 3D 1인칭 시점 던전+마법체계(나중의 시리즈에서는 파티+직업도)——이 유전자를 계승한 드퀘는 좀 더 나중에 탄생하게 된다.  



「코에이의 CRPG」가 정착되지 못한 이유

 「드퀘의 원점」인 양대 CRPG가 발매된 1981년에는 이미 일본에서도 PC게임 시장이 싹트고 있었다. 학생이 알바한 돈을 모으면 살 수 있는 보급 단가의 퍼스컴(당시에는 마이컴이라 불렸다)을 각 회사가 판매했고 카세트 테이프에 기록된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형태의 「게임 소프트」도 유통 중이었다. 
 그러나 CRPG가 일본에서 금방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우선 주된 「게임 하드웨어」 PC인 AppleII는 너무 비쌌다. 본체 정가가 30만 엔 이상이었고 기기 세트를 갖추려면 일본에서는 50만엔 이상이 필요했다고 한다. 만일 AppleII가 저렴했다면 매력적인 소프트웨어 자산 덕분에 일본 시장을 금세 석권하면서 일본산 PC는 탄생하자마자 전멸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일본의 PC 게임 시장은 AppleII의 「비싼 가격」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한 1981년은 샐러리맨을 비롯해 성인들을 열광시킨 『스페이스 인베이더』(타이토・1978) 붐에서 3년이 흘러 신흥 개발사들이 앞다투어 아케이드 게임(게임센터 업소용 게임)에 진입하던 시절이다. 세가나 남코, 코나미 등이 크게 활약한 것이 이 시기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PC 게임은 이러한 아케이드의 “이식”판이었다. 춘소프트의 나카무라 코이치 회장이 고등학생 시절에 200만 엔 이상을 번 프로 크리에이터가 되는 계기를 얻은 것도 이식 게임(권리 관계때문에 타이틀은 수정됨) 덕분이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은 거의 대부분 직감적인 액션 게임이었다. 침략하는 적이 있고 총으로 쏘거나 검으로 베는, 이른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게임 뿐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50~100엔을 넣도록 하는 비즈니스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이식으로 일본 PC 게임에서 주류가 되었던 액션 게임은 예비 지식 없이 즐길 수 있어 바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탄생한 CRPG는 D&D라는 공통 체험이 먼저 있었기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PC의 표현력이 충분하다 할 수 없는 환경이었으므로 CRPG의 표현은 플레이어 측이 상상력으로 보완하는 부분이 컸다. CRPG는 일찍이 D&D가 유행했던 적이 없는 일본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액션 게임과의 경쟁 상태에 놓이면서 고전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산 시판 CRPG 제1호는 코에이마이컴시스템의 『드래곤&프린세스』(코에이마이컴시스템・1982)다. 진행은 텍스트 어드벤처 같은 형태로 적과 만나면 집단전의 전투화면이 표시되는데 순수한 CRPG라 보기는 힘들다. 해외에서 「검과 마법」의 발상이 전달되는 중간 과정에 위치한다 봐야겠다. 
 「게임의 기획서」의 시부사와 코우 부부 인터뷰에서도 지적했지만 코에이마이컴시스템=코에이의 전신은 「세계 최초」를 개척했던 개발사다. 세계 최초의 CRPG를 개발하지는 못했지만 「일본 최초」 의 테이프는 끊었다.  

 이듬해인 1983년 동사는  「일본산 제1호인 RP-G(표기 마마(ママ))로 이름을 붙인 『쿠프왕의 비밀』(코에이마이컴시스템・1983)을 비롯하여 판타지 색이 더 강해진 『검과 마법』(코에이마이컴시스템・1983)그리고 『Dungeon』(코에이마이컴시스템・1983)의 세 가지 게임을 발매했다. 그 중 『Dungeon』은 자르고스 섬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황금향을 찾아 모험하는 설정이다. 탑뷰 2차원 맵 상에서 섬을 「모험」하고 지하에 있는 던전 내에서는 3D 1인칭 시점에서 몬스터와 대면해서 「전투」를 한다. 이미 『울티마』와 『위저드리』를 융합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사는 「RPG의 코에이」가 아니라 「사고형 SLG의 코에이」의길을 걸었다. 그 이유는 『Dungeon』의 게임 밸런스가 좋지 않았고 평가도 좋지 않아서 코에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에 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전투 밸런스는 물론 던전이 130×130칸의 넓이이다. 오토 매핑은 물론 없고 직접 손으로 방안지를 채워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미 『유격수(遊撃手)』 등 게임 플레이어의 입장을 반영한 PC 잡지는 이 게임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본 작품은 "시부사와 코우 프로듀스”로 표기된 초기의 코에이 소프트이기도 하다. 즉, 상당 부분을 자신 이외의 부하직원에게 맡겼을 것이다.  『가와나카지마 합전』(코에이마이컴시스템・1981)이나 『노부나가의 야망』(코에이마이컴시스템・1983) 등의 전략 SLG는 시부사와 코우 씨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고 테스트 플레이에도 열중했다고 한다. 아직 PC 게임 개발이 소규모였던 초기에는  「특정 개인의 관여 정도」가 게임의 재미를 좌우했을 가능성이 있다. 
 『Dungeon』은 나중에 리메이크되어 동일한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내용은 새롭게 하여 재탄생했다.  시부사와 코우 씨도 「모처럼의 좋은 재료였는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아닐까. 
 코에이가 일본 CRPG 초기의 “패권 잡기”에 실패하고 야심적인 시도였던 『Dungeon』이 유감스러운 결과로 종료된 사례는 「어떤 게임이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플레이가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당연한 규칙을 뒷받침한다. 아무리 우수한 게임 디자인도 충분치 못한 테스트 플레이라는 제약 하에서는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드퀘의 선배였던 『환몽의 심장』의 고전

 일본 내 CRPG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초대 드퀘를 말할 때 올드 게이머가 반드시 언급하는 게임이  『몽환의 심장』(크리스탈소프트・1984)시리즈다. 소프트웨어 매출은 어쨌든간에 사쿠마 아키라 씨를 비롯하여 플레이를 했다는 증언이 있는, 「프로 게임 크리에이터들에게 영향을 준 게임」이다. 
 지상에서는 2D 맵 위를 걷고 마물과 대면 전투를 한다고 하는 이 게임의 『울티마』와 『위저드리』의 합체는 그야말로 드퀘가 이룩한 미래 그 이상이었다. 시리즈 속편으로 보다 개량된 『몽환의 심장II』(크리스탈소프트・1985)도 1985년에 발매되었으니 드퀘보다 빨리 호리이 유지 씨가 이 게임을 플레이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쓰면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이 게임의 플레이 화면을 보면 아무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드퀘와 『환몽의 심장』 시리즈는 화면 디자인이나 구성이 너무나 다르다.  
 『환몽의 심장』은 화면이 자세히 구분되어 있다. 2D 맵과 적과의 대면 전투 공간(마을 등 정경도 표시), 아래 칸에 있는 커맨드 선택 칸도 항상노출된 상태다. 또한 화면 좌측에는 커맨드 결과의 텍스트 표시로 나눠져 매우 좁아 불편하다. 

プロジェクトEGG:『夢幻の心臓』ページより

 속편인 『환몽의 심장II』에서는 2D 맵과 대면 전투를 합쳐 「전투 시로 전환」이 생겨 깔끔하게 넓은 공간을 확보했으나 시야가 산이나 숲에  차단되어 주인공이 볼 수 없는 부분은 검게 칠해졌다. 「산 저편이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는 맞지만 모처럼 맵 칸을 넓힌 의미가 소용 없어졌다.  

プロジェクトEGG:『夢幻の心臓Ⅱ』ページより

 『몽환의 심장』 첫번째 작품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스타트 지점 근처에서 가장 약한 적에게 살해당해 마을에 도착할 수 없었던 점이나 처음부터 게임 동작이 느린 점 등 상당 부분을 「게임의 완성도가 좋지 않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환몽의 심장II』는 다르다. 전투 밸런스가 훨씬 좋아졌고 동작도 가벼워졌다. 시나리오도 볼륨을 갖춰 초대 드퀘를 능가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환몽의 심장』 시리즈는 PC용 CRPG의 패권을 얻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정보량의 컨트롤」이라는 벽에 가로막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전인 『울티마』나 『위저드리』에 있던 정보량을 하나하나 가져오는 것이 CRPG를 경험하지 않았던 일본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또 두 게임을 조합할 경우 복잡함도 더블이 된다. 양대 CRPG가 각각의 특징을 갖고 공존했었던 이유는 2D 맵 「모험」 또는 3D 던전 「전투」 중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 특화하지 않으면 게임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라는 면도 있다. 실제로 『울티마』 시리즈 초기에는 3D 던전이 있었으나 『울티마III』(오리진・1983)에서는 2D 맵만 사용되었다.  

 즉 『환몽의 심장』은 너무 욕심을 내서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은 것이다. 『환몽의 심장』 시리즈의 화면 구성은 당시의 하드웨어 환경에서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자세히 구분된 화면의 경우, 전투 때마다 표시를 전환하면 당시의 PC의 스펙이라면 느려서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다 실제로 즐겨보면 재미있다. 그러나 첫인상은 화면이 작아서 비주얼감은 좋지 못하다. 「잘 팔리는 게임은 비주얼이 뛰어나다」라는 경쟁 원리가 적용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2D 맵과 3D 던전을 수록하는 어려움을 기술력으로 해결한 CRPG가 세가의『판타시 스타』(세가・1987)다. 마을이나 필드에서는 2D 탑 뷰 맵, 던전에서는 유사 3D로 둘다 완전히 화면을 활용하고 있다. 던전의 이동도 몬스터도 부드럽게 애니메이션되는, 「잘 팔리는 게임의 요소」가 담긴 CRPG다. 
 다만 초대 드퀘의 1년 반이나 뒤인 1987년에서야 발매되었다.. 따라서 시대를 바꾸지는 못했으나 세가 유저를 열광시켜 나중의 『판타시 스타 온라인』 시리즈로 계승된,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더 블랙 오닉스』는 CRPG 입문 작품으로 철저한 「알기 쉬움」을 추구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시대적 요인도 있었다. 『환몽의 심장』이 출시된 1984~5년은 PC 게임의 「알기 쉬움」이 중시되던 해였다.
 1983년을 일본 CRPG 원년으로 봤을 때 이듬해인 84년은 일제히 꽃을 피운 해다. PC 게임으로는 『더 블랙 오닉스』(Bullet-Proof Software・1984)나 『드래곤 슬레이어』(니혼팔콤・1984), 『하이드라이드』(T&E SOFT・1984) 등 뛰어난 게임들이 등장했다. 게임센터로 눈을 돌리면 『드루아가의 탑』(남코・1984)이 큰 인기를 끌면서 CRPG 바람이 불던 해였다. 
 이러한 게임은 모두 알기 쉽다는 공통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해외 양대 RPG의 유산을 강하게 계승한 것이 『더 블랙 오닉스』다. 이 게임은 PC용 CRPG에서 패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더 블랙 오닉스』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저드리』의 계보로 이어지는 3D 1인칭 시점의 던전 탐색 게임이다. 즉, 『위저드리』의 복잡한 요소를 줄여서 심플하게 만든 「RPG 입문 게임」이다. 
 캐릭터 메이킹에도 「직업」이란 개념은 없고 외모만 바꿀 수 있다. 능력인 파라미터도 숨겨져 있고 플레이어가 수치를 조작할 수도 없다(『위저드리』에서는 유리한 숫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리셋하는 「리세마라」가 있었다). 전투 커맨드는  「때린다」, 「도망간다」 혹은 「약을 마신다」의 3가지로 마법도 없다. 오로지 적을 때리고 체력이 줄면 약을 마시고 더 위험해지면 도망가는 것 뿐이다. 
 캐릭터 육성은 「레벨을 올려 강한 장비를 갖추는」 CRPG의 기본에 충실하다. 동료는 자작 캐릭터뿐만 아니라 마을이나 던전에서도 스카웃할 수 있다(「부활시키는」 시스템이 없으므로 현지 조달할 수 밖에 없다). 즉 「동료를 모으는 술집」을 생략하면서 파티의 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알기 쉬움」을 최우선시 한 것이다. 

 『더 블랙 오닉스』가 오랜 기간 동안 매출 랭크 상위에 있었던 원인은 이러한 「알기 쉬움」 덕분이다. 화면 구성을 봐도 오른쪽에는 3D 던전을, 아래에는 메시지가 표시되는 깔끔한 배치로 의도적으로 플레이어가 「알기 쉽도록」  도왔음을 파악할 수 있다. 

(C)1983 by BPS

 그 중에서도 주목할 곳이 좌측의 캐릭터 칸이다. LIFE(체력)나 경험치도 그래프로 표시되어 숫자는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는 철저한 비주얼화를 꾀했다. 캐릭터들은 그래픽으로 항상 표시되어 새로운 무기나 방어구를 장비하면 외관이 달라진다. 플레이어는 상상할 필요 없이 화면을 보면 캐릭터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더 블랙 오닉스』는 CRPG가 일본의 플레이어에게는 익숙치 않다고 깨닫고 유저 인터페이스를 잘 연구한 초기 사례로 봐야 한다(개발자는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이지만).

 그런데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할까? 히트작을 내려면 「알기 쉽게 한다」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제거한 요소를 되돌리면서 알기 쉽게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직감적으로 알기 쉬운 게임으로 만들 것인가」?
 그 의미에서 사실 『더 블랙 오닉스』로 상징되는 「복잡함이나 정보량을 줄인다」라는 방향성을 추진한 후자의 노선은 일본의 독자적인 장르인 액션 RPG로 결실을 맺었다 볼 수 있지 않을까?  『드루아가의 탑』에서 『젤다의 전설』(닌텐도・1986)로 이어지는 흐름은 일본에서 뿌리 깊었던 PC 게임 제작자의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동경(이식 작업으로 화제의 인물이 되었던 나카무라 코이치 씨가 대표적이다)으로 연결되어 액션 RPG 붐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액션 RPG는 「드퀘형 CRPG과는 분리된 또 하나의 길」이며 차후 연재에서 밝히기로 한다. 

 어쨌든 액션성이 없고 직감적이지 않아 플레이어가 파악하기 어려운 『몽환의 심장』 시리즈는 역풍을 맞아야 했다. 

드퀘는 역경 속에서 탄생했다

 이렇게 1980년대 중반, 『울티마』와 『위저드리』의 시도는 히트작에 필요한 요소인 「알기 쉬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노선은 액션 RPG의 파도에 쓸려나갔다. 즉, 그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초대 드퀘는 CRPG 붐으로 순풍을 타기는 커녕, 「역풍」을 맞았던 것이다.

 그럼 초대 드퀘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드퀘를 실현한 틀.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서두에서도 밝힌 「편집」이다.

 잡지의 제한된 지면 속에 사진이나 도판, 텍스트 등의 정보량을 적절히 배치하고 유저가 자발적으로 페이지를 보도록 한다ーー「편집」이란 원래 프리라이터이자 만화원작자였던 호이이 유지 씨의 본업이며, 생업이다.  CRPG 문법에 전혀 익숙치 않았던 패미컴 유저, 저연령층(『주간소년점프』 독자 등)을 클리어까지 질리지 않게 했던 테크닉도, 역시 「편집」이다. 원래 「패미컴이라는 하드웨어」는 메모리, 표현력 모두 부족하고 용량도 작아서 그림과 음악, 문장 등 콘텐츠를 충분히 채울 수 없었다. 

 그렇다. 호리이 유지 씨를 비롯한 스태프의 「정보량을 컨트롤하는 기술」과 주간연재만화적인 「편집」을 무기로 하여 -ー드퀘는 CRPG의 역경에 맞선 것이다.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유전자가 초대 드퀘에서 합류하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CRPG라는 개념과 유저를 연결한 「편집」이야말로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해서 호리이 유지 씨 등이 초대 드퀘에서 사용한 구체적인 「편집」 테크닉을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 회도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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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로운 2020/07/05 17:12 # 답글

    미국쪽 CRPG를 즐기던 분들의 시각하곤 많이 다른게 재미있군요. 그쪽 양반들이 만들던 게임하고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게 일본스러움인지도 모르겠네요.
  • 명예로운 2020/10/20 09:13 # 삭제 답글

    위저드리는 던전 그자체인 게임인데 위저드리 던전이 단조로웠다고요? 게임 해보지도 않고 지껄인거 같은데요. 울티마 던전이 오히려 위저드리 열화판이죠. 드래곤퀘스트 제작자란 사람이 저런 헛소리 하는거보니 드퀘가 얼마나 똥겜일진 안봐도 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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