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전쟁”이 아니라 “내정”을 좋아했다. 무장에게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등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시뮬레이션 RPG의 초반을 개척한 1980년대 후반을 회고한다 게임S/W관련


『노부나가의 야망』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코에이(현 코에이테크모게임즈)  『카와나카지마 전투』  를 발매 한지 2년 후인 1983년 3월에 내놓은 초대 『노부나가의 야망』은 전국 시뮬레이션의 원조라 평가받으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코에이의 천하포무의 첫 걸음이 된 게임이다. 


  『노부나가』는 어떻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게다가 코에이가 게임 업계에서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는 “기초”가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중 한 가지로 「내정(内政)」이라는 요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직수입한 「워 SLG」가 아니라 한자가 섞인 「전국 시뮬레이션」.
 전작인 『카와나카지마 전투』가 「전장」을 재현했던 점과 비교하여 『노부나가』는 「전국」, 즉  「지역(国)」의 경영으로 중심축을 옮겼다. 


 부국강병. 전국시대라는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아 승자가 되려면 우선 지역을 살기 좋게 만들고 병사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 『노부나가』는 이러한 「내정」을 주목하곤 시스템의 중심으로 삼았다.  

 거친 전투보다도 내부에서 잘 운용하는 내정이 일본인의 취향에 맞다──나중에 와서 그렇게도 말할 수 있지만 이러한 시도는 좀처럼 실천할 수 없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발전이란 알기 쉽도록 비주얼로 「가시화」한다는 흐름 속에 있기때문이다. 본작에서 3년 후에 발매된 초대 『드래곤퀘스트』조차 게이머들이 숫자 스테이터스를 파악하기 힘든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면서 서 이동 중에는 표시를 숨기는 등의 연구를 했을 정도다. 

 요즘 게이머가 초대 『노부나가』를 봤을 때의 느끼는 첫 인상은 「숫자 투성이」일 것이다. 
 화면의 대부분을 일본 지도가 차지하고 그래피컬하게도 보이지만 오른쪽 옆에는 금화, 병량, 마을의 수 등 숫자가 배치되어 있다. 


 1년만 늦었다면 「낡은 게임」이란 느낌을 주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RPG(이하 CRPG)에서는 1984년에 『하이드라이드』나 『드루아가의 탑』이 등장하여 한눈에 파악하기쉬운 시뮬레이션 RPG의 붐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3년 시점에서는 초대 『노부나가』도 충분히 괜찮은 비주얼을 갖고 있었다. 다양한 하드웨어로 전개되느라 CG의 수준에 편차는 있지만 예를 들어 PC-8801판의 라인(선)과 페인트(채색)으로 그려진 세력도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과 같은 수준이었다.  


 숫자를 전면에 내세워 어려워보이는 『노부나가』가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절묘한 타이밍에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당초의 전장이었던 퍼스컴의 유저 연령층은 가정용 게임기보다 높고 「숫자」를 불편해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화면도 『카와나카지마』 만큼 수수하지도 않았다. 초대 『노부나가』는 「1983년 당시의 최신 PC 게임」의 조건을 충족했다. 


 그렇다곤 하나 초대 『노부나가』의 탄생으로부터 34년. 『노부나가의 야망・대지(大志)』로 총 15개 작품의 역사를 쌓아온 시리즈가 1984년에 당시에 예정이 늦어져 실패했다거나 1~2년 정도의 차이로 인기가 떨어졌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노부나가의 「내정」에는 다른 게임에는 없는 독창성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내정」에 필적하는 또 한 가지의 키포인트. 전국 SLG를 흔들리지 않는 장르로 등극시킨 이유의 힌트는 『노부나가의 야망』이라는 게임 제목에 있다........

『노부나가』의 히트를 뒷받침한 「내정」과 「캐릭터 성」

 초대 『노부나가』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창시자인 시부사와 코우 씨가 종종 말한 것 같이 전작 『카와나카지마』와 오다 노부나가의 생애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 

 (『카와나카지마』후에)「다음엔 좋아하는 노부나


가」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노부나가의 생애를 생각했을 때 전


투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와 군정(軍政)을 만들어 새로


운 세상을 재현하는 게임으로 하기로 했죠. 그래서 「내정」과


「전쟁」을 2개로 나눈 시스템을 착안했습니다. 

 


 노부나가 하면 나가시노 전투의 3단 철포나 특권을 배제하여 자유롭게 거래하는 시장인 「라쿠이치라쿠자(楽市楽座)」라는 경제 정책이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최근 연구에서는 사실이 아니며 노부나가가 발명한 것이 아니었다고 부정되고 있으나 게임적인 로망에서 볼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정과 전쟁. 두 가지는 동등한 무게를 갖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초대 『노부나가』에서는 전자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컸다. 일찍이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다」이라고 말한 군인이 있었으나 본작에서는 「전쟁은 내정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명령(커맨드)표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를 제외하고 총 11종류의 명령 중 「병사의 이동(ヘイシノイドウ)」이나 「전쟁(センソウ)」 등 전쟁 관련이 4가지. 그에 비해 「금과 쌀을 준다(キン、コメヲアタエル)」 등 내정으로 분류할 수 있는 명령이 6가지다. 「사카이의 상인(サカイノショウニン)」과 같이 상거래가 전쟁과 동격을 차지하는 경우는 1983년 당시 그 외의 게임에서는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장에서의 파워 밸런스는 더 극단적이다. 「금화(キンカ)」와 「병량(ヒョウロウ)」에 따라 파견할 병사의 상한선이 정해지고 그 범위에서 병량과 함께 병사를 보낸다. 강약은 순수하게 금화와 병량 즉, 「내정」에서 부지런히 벌었던 리소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한 「내정」에 필적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은 「캐릭터성」일 것이다. 우선 『노부나가의 야망』이란 제목으로 발탁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인기를 자랑하는 무장이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를 무대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주역이 아니어도 중요인물 중 한명으로 반드시 나온다.『노부나가 콘체르토』나 『노부나가의 셰프』『노부나가의 시노비』  등 노부나가 관련 만화도 셀 수 없다. 히라노 코우타의 『드리프터즈』에서도 분뇨와 시체에서 초석을 채취하여 화약을 대량생산하는 등 음흉하면서도 멋진 활약을 펼친다. 

 본 작품은 노부나가를 단순한 게임 제목이 아니라 캐럭터로 취급했다. 초반에서 능력치를 정하는 부분을 보자.  


 초대 『노부나가』에서 선택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두 명, 노부나가와 다케다 신겐이다. 단, 신겐은 인간 플레이어가 2명일 때만, 1명일 경우에는 자동으로 노부나가가 된다. 파라미터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수치를 멈추는 랜덤 방식으로 결정된다. 즉, 코에이의 과거작인 CRPG 『던전』과 거의 동일하다. 

 즉 초대 「노부나가」는 CRPG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워 SLG는 인격이 없는 「군단」 내지 이름 없는 사령관이 주역이었지만 본작은 노부나가라고 하는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측면도 있었던 셈이다. 

『삼국지』에서 도입된 배하 무장 시스템의 폭발력

 초기의 『노부나가』 시리즈는 캐릭터 수가 적었다. 특히 초대는 지역도 적고 한 지역당 한 명의 무장=다이묘만 나오고 사실이나 역사 소설에서 이름이 알려진 대부분의 무장은 채택되지 못했다. 

 속편인 2번째의 『노부나가의 야망・전국판』에서도 무장이 부족한 상황은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었다. 초대의 17개 지역에서 북쪽의 에조부터 남쪽의 사쓰마까지 커버한 50개 지역으로 확대했으나 「한 지역당 한 명의 무장」의 원칙은 변함 없었다. 무장의 수는 17에서 50으로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무장=지역 그 자체라고하는 룰은 단순히 무장 캐릭터 부족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 진행 상의 문제로도 이어졌다. 다이묘가 죽으면 생전에 통치했던 영지가 그대로 전승국의 것이 된다고 하는, 전국 시대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무장은 커녕, 후계자라는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진기한 현상이다. 

 이러한 모순을 타개할 아이디어는 이윽고 시부사와 코우 씨가 작업한 『삼국지』에서 나왔다. 동일한 작자가 만들고 역사를 주제로 한 형제작품인 『노부나가』와 『삼국지』는 시부사와 씨가 두 게임을 왕복하면서  발전해왔다. 


 그 아이디어는 군주에게 속한 「배하 무장」이었다. 삼국지 스토리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재 모집」과 「인재가 진영을 오고가는 것」이란 얘기다. 

 유비현덕은 관우, 장비와 의형제의 예를 맺고 천재 군사인 제갈공명을 삼고의 예로 맞이하면서 서서히 인재를 모집한다. 또한 유비 본인도 원술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형주의 유표에게 의지하고..... 각 진영을 오고 간다. 
즉,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유비 단 한 명밖에 없는 촉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산하에 거둔 「배하 무장」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상한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무장은 인재 모집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군주가 사망하더라도 후계자가 있으며 국가는 멸망하지 않는다」라는 시스템적인 담보이기도 했다. 

인재 모집의 중요성이나 후계자의 필요는 중국의 삼국시대나 일본의 전국시대 모두 동일하다. 이렇게 시리즈 제3탄 『노부나가의 야망・전국군웅전』(1988년 12월 발매)은 약 400명 이상의 실재 무장이 각지의 다이묘 아래에 배치되었고 각 배하 무장에게도 다이묘와 동일하게 정치력이나 전투력 등의 능력치가 설정되어 캐릭터성을 갖게 되었다. 

 배하 무장은 시스템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한편으로 『노부나가』 시리즈의 캐릭터 게임화를 진행시켰다. 게임 원작이 아무도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아 라이선스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는 「사실」인 만큼 최강의 캐릭터 비즈니스가 탄생한 셈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나중에 역사 게임을 통해서 명승고적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일으킨 「역사 걸」붐으로도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은 전국 SLG의 군웅할거 시대 

 2018년 현재, 일본에서 전국시대를 주제로 한 SLG의 주류는 『노부나가의 야망』과 『삼국지』 시리즈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이는 일본 RPG나 액션 유력 IP가 스퀘어 에닉스의 『드퀘』나 『FF』 이외에도 “다수 존재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전국 SLG에서는 다른 장르와 같은 시장경쟁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진 않다. 『노부나가의 야망 전국판』이 크게 히트한 몇 년후인 1988년~1989년에 계속해서 전국 SLG의 야심작이 다른 회사에서 발매되어 각각의 강점을 통해 각축전을 벌였다. 『노부나가의 야망』도 격렬한 경쟁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시리즈다.  게임의 발전은 「아이디어의 유전자를 계승하는 것」을 기점으로 한다고 본 연재에서 종종 밝혔다.  어떤 게임은 선행한 히트작의 시스템을 치밀화하고 어떤 게임은 데이터를 보강한다. 또 어떤 게임은 히트작이 중점을 둔 메인 컨셉을 일부러 변경하고 다른 점에 컨셉의 중점을 둔다. 또는 당시의 세간의 유행을 추가하여 다른 맛을 준다.  재미있는 부분을 발굴하든, 인기요소에 대한 안티테제를 적용하든, 선행작을 기준점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 주변에 유저가 요구하는 무엇인가가 있고 또한 기준점에 「부족함」 내지 「과잉」으로 생각되는 어떠한 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부나가의 야망』의 대성공의 영향을 받아 정면으로 등장한 게임은 예상 밖으로 당시의 퍼스컴보다 CPU 파워나 미디어 용량 등 리소스가 훨씬 적은 패미컴용 게임이었다. 

 먼저 심플한 형태의 추격자가 남코트(남코의 패미컴용 브랜드)의 『독안룡 마사무네』다. ROM 용량이 비교적 적어 주인공을 다테 마사무네로 압축하고 천하통일을 노리는 생애를 묘사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그 전년에 대하드라마로 방송된 『독안룡 마사무네』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개간을 해서 수확량을 높이기, 병졸을 모아 훈련하는 등 내정으로 부국강병을 추진하고 그 결과를 전투에 퍼부어 다른 곳을 정복하는 기본도 선행작과 동일했다. 아이콘을 선택해서 명령하기나 공격받은 부대가 실시간으로 감소하는 전투 장면 등 이미 『노부나가』에 있었던 요소를 시각적으로 알기 쉽도록 구현했다. 이 작품의 독창성은 오우(奥羽)지역을 통일한 후의 「남코트 신문 도호쿠판」이다. 남코의 『파미스타』 시리즈에 등장한 「남코트 신문」을 연상시키는 코미컬한 내용으로 마사무네 등의 외모가 나이에 따라 변하는 등 공을 들였다. 전체적으로는 『노부나가』와의 대결보다 입문편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 하나는 『호토토기스(不如帰)』。발매는 아이렘으로 개발은 탐텍스. 실제로는 그래픽이나 데이터, 메시지까지 1명의 개발자가 작업했다고 하며 그만큼 시스템에서 작가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본작이 게임 역사에 남긴 족적은 우선 「배하 무장」이란 개념을 먼저 채택한 사실이다. 이 게임이 1988년 8월에 발매했고 『노부나가의 야망・전국군웅전』이 같은 해 12월에 나왔다. 적어도 『노부나가』에서 힌트를 얻지 않고 자력으로 배하무장이란 아이디어에 도달한 셈이다. 독자적으로 발생했으므로 구체적인 내용도 『노부나가』와는 대조적이다. 무장의 능력치를 숨겨서 플레이어가 볼 수 없게 한 것이다.   『노부나가』는 무장의 파라미터를 가시화하여 「무력이 뛰어나지만 지략이 부족하다」 등 캐랙터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호토토기스』에서는 실제로 플레이하고 움직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리얼하다고 하면 리얼한 것이 아닐까? 현실에서도 상사가 부하의 파라미터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접하면서 비로소 능력과 사람됨됨이를 알 수 있다. 「말은 타보고, 사람은 사귀어 보아라」라는 전국시대의 속담 그 자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독창적인 요소는 「천하통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한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관위의 존재와 종속 다이묘라는 개념이다. 강력한 다이묘는 약소 다이묘를 복종시켜 원군으로 동원할 수 있고, 전투에 승리하여 영토를 넓히면 「관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올린 관위로 종속 지역을 더 늘릴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관백,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이대장군이라는 「관위」를 최대한 이용해서 천하통일을 이뤘다. 무력이 아니라 정치력, 권력이라는 소프트파워로 정점에 오른다는 발상은 『노부나가』 시리즈에 몇 년 앞섰다. 이것이  「시기상조」였다는 관점도 있다. 『호토토기스』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으로, 일부 유저의 기억에 남아있다. 대부분의 전국 SLG가 『노부나가』에 기초하여 시스템을 더하고 뺐던 것에 비해서 「타도 노부나가」를 강렬히 느끼게 하는 게임도 등장했다. 역시 전략 SLG의 대표 개발사이며 『대전략』 시리즈로 무대를 근현대로 삼아 공존했던 시스템소프트가 내놓은 『천하통일』(1989년)이다.


 이 게임에도 『노부나가』계 처럼 내정은 있다. 그러나 메인은 어디까지나 「정복」이다. 적군인 CPU도 영지 확대를 우선시하며 1년이 4턴이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12턴)내정 중에 지역이 강탈당한다. 노부나가가 있는 오와리(尾張)가 시작 지점으로 군웅할거, 여러 적대 세력이 나오는 높은 긴장감. 하나의 지역에 여러 성이 있고 이를 모두 함락해야 「그 지역을 공략한 것」이 되기 때문에 전투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다.  성과 성은 「길」로 연결된다. 원하는 영지를 노리거나 상경(上京)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전략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바로 근처에 있는 성이라도 길이 연결되지 않으면 공격할 수 없다. 오직 인접한 지역을 힘으로 밀어붙여 공격하는 『노부나가』와는 상당히 색깔이 다르다. 배하 무장도 구현되어 무장 수는 『전국군웅전』을 능가하는 약 800명. 단, 아무리 우수한 인재를 갖춰도 어리석은 다이묘에게는 쓸모가 없음을 재현한 것이 CP 시스템이다. 커맨드의 실행은 턴 시작 시에 할당되는 CP(커맨드 포인트)를 소비해서 실시한다. CP는 유능한 다이묘일 수록 많고, 무능하면 적다. 후자는 군사 업무에 너무 공을 들이면 내정이 소홀해지지만 전자는 모두 가능하다. 한편 전투 시스템은 매우 간단하다. 세로 5×가로 6칸의 작은 전장에 총 4개 부대를 배치하여 적군과 대치한다. 각 부대는 좌우(즉 앞뒤)로만 움직이고 정면의 적만 공격할 수 있다. 각 턴의 선공과 후공은 랜덤으로 2회 연속해서 공격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서 운 요소도 강하다. 또한 각 부대에는 「편성 계수」가 있어서 이것이 한 부대라도 제로가 되면 패배한다. 전멸하지는 않아도 통솔할 수 없어서 무너진다는 전국 시대 실정을 반영한 것이다. 

 요즘에는 AI가 장기나 바둑 분야에서 인간을 물리치는 일도 드물지 않지만 당시의 퍼스컴은 연산력도 낮고 알고리즘도 부족하여 인간과의 역량 차이가 컸다. 『천하통일』은 인간이 조작할 여지를 줄이고 운이란 요소를 확대함으로써 밸런스 조절을 꾀했다고 생각된다. 사실 CPU의 운이 상당히 강하여 인간 플레이어와 접전을 연출했다. 종반에서는 CPU도 일대 세력이 되어 천하를 가르는 결전이 반복되는 클라이막스를 맞이한다. 훌륭한 밸런스 감각은 『대전략』 시리즈를 키운 시스템소프트와 수많은 명작 보드 게임을 만든 게임 디자이너 쿠로다 유키히로의 공동 작업 덕분일 것이다.  『천하통일』 시리즈는 「노부나가」에 필적하는 잠재성을 숨겼지만 전국 SLG 중견 작품 중 하나에 머물렀다. 그 이유로는 지나치게 화면 그래픽이 단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국 지도도 좋게 말하면 소박했다. 또한  「무장의 얼굴 그래픽이 없다」라는 점은 너무 심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 SLG의 상품적인 강점은 전국 무장이란 캐릭터와 그 컬렉션성에 있다.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래픽이 필수인데 이를 위해서는 맨파워가 소요되며 인기 시리즈를 갖고 자금이 충분한 기존 개발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미 코에이의 SLG 시장에서의 천하포무는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뮬레이션 RPG의 기초가 된 『대전략』 시리즈

 워 SLG를 기반으로, 각 유닛을 인격과 성장 요소를 가진 「캐릭터」로 다루고 스토리성을 추가한 게임의 총칭을 시뮬레이션 RPG(이하  SRPG)라 한다. 해외에는 이러한 예가 거의 없고 일본의 독자적인 장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해외 대형 게임미디어인 「Game Informer」가 뽑은 「베스트 스트래티지 전략/RPG(시뮬레이션 RPG)」의 대부분을 일본 타이틀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만일 국제적으로 활발히 개발되는 장르라면 자금과 개발력에서 모두 열세에 빠진 일본이 독점할 리가 없다... 라는 소극적인 이유도 있다. 코에이의 역사 SLG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무장이라는 캐릭터성」에 있다고 추측된다는 점은 앞에서도 밝혔다.

 캐릭터는 감정이입의 단서가 되고 그 막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속편을 거듭할 때마다 쌓여서 증가하고 연마된다. 전작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 그 자체가 「속편을 구입할 이유」이기도 하고 시리즈화함에 있어서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와 동시에 무장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없는 타사의 새로운 시리즈와 압도적인 격차가 되어 공격을 방지한다. 그야말로 「캐릭터가 단단한 방어막」을 이루는 시스템이다. 일본에서 일대 장르로 성장을 거둔 또 하나의 SLG, SRPG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여 플레이어에게 접근한다.  보드 상에서 움직이는 말(유닛)을 인격을 갖춘 캐릭터로 취급하는 것이다. RPG로부터 「성장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쟁」에서 출발한 워 SLG가 이야기를 엮기 시작하는 것이다. 

 워 SLG에도 「이야기」를 도입하는 시도는 있었다. 여러 맵을 연결하여 연속성을 갖도록 해서 유닛의 레벨을 계승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한 시도가 시스템소프트의 『대전략』의 연장선에 있는 『판타지 나이트』나 『마스터 오브 몬스터즈』였음은 이미 개발자 본인이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맵 상에 유닛을 두고 적 유닛을 전멸 내지는 거점을 제압」이나 「유닛이 성장하는 요소」를 채택한 최초의 메이저 작품은 『대전략』 시리즈다. 동일한 양식을 계승한 SRPG 전체가 이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전략』 시리즈나 『마스터 오브 몬스터즈』는 PC 게임 시장에서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의 “주 무대”가 된 가정용게임기 시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고 적어도 『대전략』  IP가 메이저가 되지는 못했다. 세가 덕분에 겨우  『어드밴스드 대전략』 시리즈가 총 100만장을 달성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한 흐름을 계승하는 작품은 없다. 


패미컴판 『대전략』의 실패가 제시한 「알기 쉬움」의 벽

 이러한 상황은 초기에 패미컴판 『대전략』(보스텍에서 발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 힘들고 가정용 게임 참여의 초기에 실패했던 사정이 컸을 것이다. 패미컴판 『대전략』은 퍼스컴판의 본가・시스템소프트가 아니라 라이선스를 받은 보스텍이 발매했다. 타사 개발이란 점과 PC판과의 플레이 감각의 차이도 있어, 원작 스태프의 평가는 「아, 그 작품은 정말 너무했어」라며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의 일반적인 「퍼스컴에서 가정용 하드웨어로의이식」 전체의 평균값으로 생각하면 패미컴판 『대전략』의 완성도는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었다. 원작 맵에서 지형 칩은 육각형 헥스를 사용했던 것을 이식판에서는 사각형 스퀘어를 채택하면서 절반씩 이동시켜서 「6개 칩에 인접시킨다」라는 헥스와 동일한 상황을 재현했다. 헥스를 단위로 한 구성은 표면상의 외관뿐 아니라 원작의 핵심인 「전략」과 일체를 이루는 요소다. 스퀘어의 상하좌우보다도 「여섯 방향에 각각의 의미」를 갖는 헥스야말로 전략에 깊이를 준다. 만일 간단한 칸으로 바꿨다면 원작판의 맵 이식 작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대전략』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대전략』에서 지형이 아주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패미컴판의 『대전략』은 지형을 크게 보이게 하도록 헥


스를 크게 했어요. 


그런데 그 결과 한 화면에 들어가는 범위가 작아져서 적을 보려


면 일일이 스크롤해야 했습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적으로는 최악


화면이었죠. 


 원작 스태프로부터 비판을 받은 요소 중 가장 큰 것이 「지형의 크기」다. 평지에서 싸우거나 숲에서 싸우거나 싸우는 곳에 따라 전투의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대전략』인데 지형을 크게 한 결과, 전체 상황을 확인해서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을 망치게 된 것이다. 

 PC 게임을 가정용 게임으로 이식하거나 아이디어를 도입할 때 항상 「알기 쉬움의 벽」이 가로막는다. 전자는 PC 게임 전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므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 자체에도 지식이 필요한 「알기 어려움」을 극복한 유저를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요소도 용서 받을 수 있다.  

 한편 가정용 게임은 「ROM 카세트를 꽂으면 바로 즐길 수 있다」에 익숙한 유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원작 PC 게임의 「알기 어려움」을 그대로 제공할 수는 없다. PC용 컴퓨터 RPG의 「알기 어려움」을 초등학생도 즐겨서 클리어할 수 있도록 한 초대 『드퀘』 는 그야말로 아이디어의 결정체였다.  


 패미컴판 『대전략』의 스태프들도 그 나름대로 「알기 쉬움」을 의식했음은 전투 화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원작에서는 효과음도 없었던 배틀에 사운드나 컬러를 통해 적과 아군의 파라미터도 표시. 즉,「비주얼적인 다이나믹함」을 「알기 쉬움」으로 파악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맵을 한 눈에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전략」면의 재미가 떨어졌다. 패미컴을 비롯, 당시의 가정용 게임기는 표현력과 처리 능력 모두 낮았고 완성도는 제한되었다. 그 중에서 「재미」와 「알기 쉬움」을 모두 갖춘 아이디어가 패미컴판 『대전략』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알기 어려움」에서 출발한 워 SLG가 가정용 게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이 시도되었다. 하나는 해상도가 제한된 게임 화면에 맞춰 정리된 유저 인터페스. 또 하나는 싸우는 유닛에 감정을 이입하기 쉽도록 하는 「성장하는 캐릭터」로의 전환. 이것은 『패미컴워즈』와 『파이어엠블렘』 및 『SD 건담 스크램블 워즈』에서 『슈퍼로봇대전』이라는 두 개의 흐름을 이루면서 SRPG의 일대 장르를 구축하게 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연재에서 다루기로 한다. 


덧글

  • 자유로운 2020/04/20 00:30 # 답글

    대전략은 확실히 그놈의 스크롤 문제가 사람 신경을 여러번 건드렸지요. 이게 개선된 작품들과 아닌 작품의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니까요.
  • 3인칭관찰자 2020/04/20 04:46 # 답글

    시스템소프트 천하통일 시리즈도 그 특유의 전략성을 느끼며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통일할 쯤 되면 툭하면 튕기는 천하통일 3 고질적 오류(패치로도 끝내 못 잡았던 걸로 기억....)에 시달리다 결국 빡쳐서 접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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