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이 '노부나가의 야망'은 시뮬레이션 게임 역사상 특이점인가? 인류가 게임을 통해 전쟁을 시뮬레이션했던 역사를 돌아본다. 게임S/W관련

시뮬레이션이란 실제로 실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가상의 모델을 만들어 조작할 수 있도록 한 모의 실험을 말한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게임”(이하 SLG)이란 거기에 오락성을 부여하여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한 컴퓨터 게임 장르이다.――
 그럼 오늘부터 본 연재를 통해 SLG이는 장르의 역사를 해설하겠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정의」를 보고도 알 수 있듯이 SLG은 액션이나 어드벤처, RPG와 같이 「하나의 큰 덩어리」로 다뤄지기 쉽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 장르」 등의 앙케트에서도 「SLG」 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합쳐지는 상황을 종종 보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image by Will Wright, Maxis Software/Electronic Arts (original software); Don Hopkins, DUX Software (Unix port); Tomhannen (take screenshot); bayo (remove last reference to SimCity) [GPLv3], via Wikimedia Commons 

예를 들어 「삼국지」 시리즈는 역사 SLG, 「심시티」 시리즈는 도시 경영 SLG, 그리고 실제 파친코 기기를 재현한 「파치오군」 시리즈는 파친코 SLG이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제각각인 집합을...  「파치오군」과 「삼국지」를……어떻게 동일하게 취급한단 말인가?

 그렇다, 시뮬레이트=「모방하는」 대상이 되는 「현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되므로 SLG을 다루는 방식도 광범위해져 산만해지는 경향을 피하기 힘들다. 
 그래서 본 연재 SLG편 제1회에서는 역사적으로 논의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원조 SLG」라 할 수 있는  「워(전쟁) 게임」이다.
 워 게임이 SLG의 원점인 이유는 간단하다. 원리적으로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존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SLG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드라이빙 게임이나 비행기 시뮬레이터는 실제 기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재현하는 계산 능력이 필요하며 주사위 등 아날로그적인 수법을 이용해서 그러한 계산을 실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 경영 SLG는 어떤가 하면 사실 이 분야도 컴퓨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산을 최적으로 분배하고……등등 외부와 관계 없이 조직 내에서 완결되는 「1인 게임」의 비중이 큰 경영 SLG는 역시 PC나 게임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Image by Chunky Rice.  Licensed under the terms of cc-by-3.0.) 
물론, 호텔 체인의 투자와 합병을 주제로 한 고전 보드 게임인 『어콰이어』는 경영 SLG에 가깝다. 하지만 「여러 플레이어가 겨룬다」라는 체제를 갖추고 한정된 파이를 쟁탈하고 주식을 사서 다른 사람의 체인에 편승한다 라는 플레이 방법은 역시 기존 보드 게임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워 게임도 역시 인간끼리의 투쟁을 원형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국가」나 「군대」를 연출한다고 한다면 워 게임은 「전쟁의 모방」이 된다. 여기에서 인간 플레이어 한 사람을 컴퓨터로 치환한다면 가장 원시적인 전쟁 SLG이 탄생되는 셈이다.



그러한 워 게임을 기점으로 한 초기 SLG에서 일본 여명기의 위대한 완성점은 초대 『노부나가의 야망』일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PC용 워 게임은 존재했었고 『노부나가의 야망』이 일본 최초의 SLG은 아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기록했고 일본에서 「액션성이 없는 SLG」이 정착되는 기반을 만든 개척자는 바로 노부나가의 야망이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대단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곧 다루기로 하고  그럼 우선 컴퓨터 게임 이전의 워 게임의 행보를 만나보자.

미국에서의 워 게임의 발전과 일본 상륙

먼저 워 게임이 보급된 시작 지점을 확인하자.
 시기로 본다면 1954년――찰스 S. 로버츠가 최초의 상업 기반으로 평가되는 워 게임 『택틱스』를 자비 출판한 해가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워 게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나 일반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된 시점은 여기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한 상업적 성공에 의해 1958년에 창업한 아발론힐은 이 작품을 개정하고 같은 해에 『택틱스Ⅱ』를 개발한다. 이것은 「대전략」개발 비화에서 개발자 중 한 사람인・후쿠다씨가 언급했던 내용이다.

 『택틱스』가 새로웠던 점은 「전략」면에 집중했던 것이다. 워 게임의 역사는 미니어처와 함께 진행되었는데 아무래도 휴대하거나 반복해서 플레이하기에는 지나치게 불편한 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두꺼운 종이로 된 말을 사용하여 캐릭터성을 제거함으로써 워 게임이 가진 「전략성」을 세련되게 다듬었다.  구체적으로는 육각형 칸 「헥스」의 채택, 지배 구역(ZOC)이란 개념, 적과 아군의 전력 대비에 따른 전투 결과표, 지형 효과……등의 콘셉트를 도입하여 현대 전략 SLG의 기반을 굳혔다.

 또한 아발론힐에서 게임을 디자인했던 디시전 게임즈,웨스트엔드 게임즈 등의 그룹이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계속해서 워 게임 메이커를 탄생시키는 시대가 도래했다. 
 개리 가이각스가 직접 디자인한 워 게임을 기초로 한 RPG의 원점인 『던전&드래곤』(이하 『D&D』)을 개발・발매한 것도 이 시기이다. 「워 게임(의 유행)이 RPG를 키웠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Image by Moroboshi.  Licensed under the terms of cc-by-3.0.)※1 디시전 게임즈

진짜 군인들이 작전을 입안하기 위해 사용한 「작전 연습(兵棋演習)」에서 기원

그럼 이러한 워 게임의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보급되기 전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예를 들어 워 게임을 「전쟁을 모의적으로 재현하는 유희」라고 정의한다면 그 기원은 기원전 고대 인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8=64칸의 반면에서 왕・코끼리・말・전차(혹은 배)・병사의 5종의 말을 움직이는 「차투랑가」라는 게임이 있었다고 한다. 유력한 설로 이것이 2명이 즐기는 룰로 바뀐 후에 수출된 것이 서양으로 건너가 체스로, 동양에서는 장기가 되었다라는 설이 있다. 그렇다곤 하나 장기나 체스는 추상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전장을 재현하는」 의미는 상당히 희석된다. 반대로 말해서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다른 군대나 장비의 이미지를 희석해 「상상에 맡긴」 덕분에 국경을 넘어서 보급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말이다. 

(Photo by Getty Images) 
어쨌든 이러한 인류의 활동 중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전쟁을 「가상」으로 해결하려는 합리적 사고는 군인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계승되었다――그것이 군사 연구에 사용되는 「작전 연습」이다.
 원래 체스의 룰을 유용했던 워 게임에 현대의 SLG와도 연결되는 요소를 도입한 것이 19세기 프로이센(과거의 독일) 육군의 라이스비츠 부자가 만든 「크릭스슈필」이었다.

 대결하는 2명이 군대의 지휘관이 되어 다양한 지형을 모방한 지도 위에서 기병은 기병 나름대로, 보병은 보병 나름대로의 이동 속도로 움직인다……등의 요소는 그 이전의 워 게임과 변함없다.
 하지만 그 이전의 워 게임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요소도 있다――바로 「주사위의 도입」이다.
 적과 아군의 부대가 충돌하면 주사위를 던져 승패를 정한다. 전력이 큰 쪽은 그만큼 주사위의 눈에 수정값을 가산한다.  「대국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는 않는 쪽이 항상 이기는」 체스에 도쿠오카 마사토시 씨가 말하는 「난수를 통한 쾌감」이 주입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크릭스슈필을 군대에 도입하여 보급시키는 계기를 만든 사람이 당시의 프로이센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였다는 점이다. 그는 적어도 전쟁 역사에 있어서는 뛰어난 점이 하나도 없던 왕이었다. 1806년에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가 대패를 맛보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크릭스슈필을 참모총장 뮈플링이 발탁했을 때 빌헬름 3세는 모든 연대에 세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의 육군대학에는 그 후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의 참모총장인 몰트케도 있었다……그럼으로써 우선 SLG의 프로토 타입은 유용함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놀이」와 작전 연습이 합체된 미니어처 워 게임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프로페셔널 군인이 작전 입안하는 차원의 워 게임(의 원형)의 역사를 알아보았다. 그럼 일반 대중에 보급되진 않았다곤 하나 「일반인이 즐기려고 생각하면」 즐길 수 있는 워 게임 중 「가장 오래된 사례」는 무엇일까? 그것은 1892년에 영국에서 판매된 『제인 해전 게임』일 것이다. 작자는 프레드 제인이다. 세계 각국의 해군에 소속된 전함 등의 자료로 유명한 「제인 함정 연감」을 창간한 사람이다. 제인은 함선 정보 전문가이기 이전에 사실은 워 게이머이며 게임 디자이너였다. 실제로 「제인 함정 연감」도 원래는 자신의 해전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자료집으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룰은 다음과 같다――배의 장갑과 대포의 위력에 랭크를 매기고 동일한 랭크의 대포라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지만 관통력은 거리에 비례해서 낮아진다. 배의 명중 부분은 랜덤으로 결정되며 맞을 때마다 대미지가 축적되고 진행하면서 배는 침몰한다…….
 다만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그 룰과 존재가 모두 잊혀 「제인 함정 연감」만 남았기 때문에 후세의 게임에 영향을 주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현대의 작품군에 직접 연결되는 「가장 오래된 워 게임」이라 불리는 것은 역시 H. G. 웰스가 제작한 『리틀 워즈』가 아닐까? 『타임머신』이나 『우주전쟁』 등의 고전을 통해 SF의 아버지라 불렸던 작가는 사실 워 게임 디자이너의 대선배이기도 했던 것이다. 



  『리틀 워즈』는 게임 지침서라는 형태로, 룰・소설・보충의 3부로 구성된다. 테이블 토크 RPG의 룰북과 리플레이가 세트로 된 느낌이다.
 룰은 아주 간단하다. 턴제로 구성되며 적과 아군으로 나눠진 두 사람이 대치하여 우선 한쪽이 모든 부대를 움직이고 다음으로 상대방이 군대를 움직인다. 보병은 1회 1피트, 기병과 포병은 2피트 이동. 포병은 스프링으로 초크를 날리는 장난감이며 6발의 탄수 제한이 있고 플레이어는 실제로 상대방을 겨냥해서 쏜다. 기병과 보병이 접촉했을 때는 동전 던지기로 승패를 결정한다. 
 다만 이 정도로는 지나치게 단순한데다가 게임 밸런스도 좋지 않았다. 즉, 운이 좋으면 한 명의 보병이 다른 유닛을 모두 무찌를 수 있던 것이다. 웰스는 그 개량 프로세스를 텍스트로 기록하고 지원이나 보급, 고립이나 포로 등의 추가 룰이 도입되어 완성형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리틀 워즈』가 군사에 원점을 둔 워 게임의 흐름을 계승함과 동시에 역시 위에서 언급한  「미니어처 게임」의 발전형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미니어처 게임이란 요약하자면 어린아이가 군인 인형을 사용해 지휘관이 되는 「가상의 놀이」다. 19세기부터 주석으로 만든 군인을 이용해 전장을 재현하는 놀이가 있었는데 엄밀한 룰이나 특정 승리 조건은 없었고 순수하게  「움직이는 것」, 「싸우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웰스는 그 룰을 정비하여 지적인 흥분도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든 셈이다. 
 기호가 적혔던 따분한 말이나 함선이 인격을 가진 「인형」이 되었다. 그러자 말이 캐릭터성을 갖게 되면서 감정을 이입하기 쉬워졌다. 반대 측면에서 어린이의 놀이였던 미니어처 게임에 룰이 도입되자 「인형 놀이」는 어른을 매혹시킬 수 있는 심오함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미니어처×워 게임의 결합은 직접적으로는 워해머 시리즈 등 현대의 미니어처 게임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말이 캐릭터성을 획득한 것은 나중에 워 게임으로부터 파생된 『D&D』 등 테이블 토크 RPG의 출현을 촉진했다 할 수 있다.  

Image by Arnaud Ligny.  Licensed under the terms of cc-by-2.0.) 

그것이 나아가서는 시뮬레이션 RPG, 즉 워 게임의 「지휘관」 시점과 캐릭터의 성장이나 생사를 중시하는 게임으로도 연결되었다……란 본 연재 조금 후에서 다룰 이야기다. 
 그렇다――원래 워 게임은 전장의 군인이 되는 「가상의 놀이다」. 이 시스템에 은근히 숨겨졌던 동심 속에는 처음부터 RPG 탄생이라는 싹이 잉태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의 워 게임의 역사

 피규어가 먼저인가, 워 게임이 먼저인가――그 후 SLG의 역사는 양자가 서로 지탱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도 밝힌 것 같이 찰스  S. 로버츠가 제작한 최초의 상업 기반 게임인  『택틱스』는 그야말로 피규어의 성질을 버림으로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반에 대한 보급 면에서는 「피규어」가 앞섰다 볼 수 있다. 즉, 일본에서 워 게임이 널리 보급된 계기를 만든 것이 전통 있는 모형 잡지인 「월간 하비 재팬」이었기 때문이다. 


 1969년 미니카 정보잡지로 창간된 월간 하비 재팬은 나중에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도 다루는 모형 잡지로 발전했다. 그 이유는 모체가 된 회사가 해외 완구나 하비 상품을 수입・판매하는 회사인 포스트 하비였기 때문이다. 실은 「해외 문화를 소개하는 창구(수입품 판매도 겸함)」라는 성격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잡지에서 미니어처 워 게임이 소개된 것은 1971년이었다. 「모델 솔저의 세계」라는 연재를 통해서였다. 스케일 모델 “만”을 만드는 것이 주류였던 당시의 밀리터리 모형에 정경을 집어넣은 디오라마도 즐기자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이 시점에서 워 게임은 어디까지나 부록이었다. 연재 초반은 디오라마 제작 방법이나 관련 사진, 역사 고증에 할애되었고 겨우 4회째에 게임이 언급된다. 그것도 병사 피규어가 만들어지는 문맥 차원에서  「30밀리 워 게임 스케일」이 열몇 줄 정도 소개되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그 후 연재를 하면서 워 게임 그 자체의 소개, 나아가 오리지널 게임(룰)의 게재……등 점점 게임으로 중심축이 이동되어갔다.그러한 상황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연재는 총 6회로 1번 끝났으나 워 게임 관련 기사는 이름을 바꾸고 필자를 교체하면서 「월간 하비 재팬」 잡지상에서 바통을 이어 계승되었다. 그리고 1975년 4월 호에서 아발론힐의 게임을 수입 판매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드디어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워 게임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legal alien wiki) 

또한 매스미디어 분야에서는 「월간 하비 재팬」이 앞섰으나 워 게임 수입 분야에서는  「키야 통상(木屋通商)」이라는 업자가 앞서갔다. 이윽고 일본어로 번역하여 게임 판매를 다툴 정도의 「시장」이 탄생했다.
 참고로 시마모토 카즈히코 선생의 『아오이 호노오』 11권에는 『택틱스II』가 원 출처로 생각되는 「BACTICS-II」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호노오 모유루는 이동 전투 룰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서 고민했는데 사실 이러한 상황은 지금이라면 「초월 번역」이라 불릴만한 룰에 대한 빗나간 번역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이 되었다.
 NEC의 PC-8001과 후지쯔의 FM-8 등 어느 정도는 그래픽 능력을 갖춘 퍼스컴이 나온 시기였다. 

 
 이때 아직 수십만 엔이나 했지만 「워 게임을 표현할 수 있는 스펙을 가진 보급 하드웨어」가 마침내 등장한 것이다.
 병사나 전차 등의 말은 기호화되어 작은 사이즈로 만들 수 있지만 적・아군이 대치하는 전장은  「넓이」와 「정밀함」이 필요하다. PC-8001의 해상도는 160×100도트로 지금 본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NEC의 이전 하드웨어였던 TK-80은 「8자리 글자 표시(LED)」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피규어와 종이 워 게임과 마찬가지로 퍼스컴용 워 게임도 「수입」되었다. 원조인 아발론힐이 발매했던 Apple II나 Atari800용 등의 게임이 일본 PC용으로 이식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키야 통상」도 이러한 작업을 담당했다. 

Image by Bilby.  Licensed under the terms of cc-by-3.0.)※1 TK-80


 정확히는 CSK 소프트웨어 프로덕츠가 판매를 맡고 키야 통상은 개발을 담당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전자는 물론 「그 유명한」 CSK의 자회사다. 일찍이 세가를 인수하기도 했던 CSK는 이 무렵부터 게임과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슬슬 본 주제로 들어볼까 한다. 
 처음에 완성점으로 설정한 『노부나가의 야망』의 탄생. 그것을 탄생시킨 코에이 마이컴 시스템(당시)은 그야말로 80년대에 SLG을 등장시킨 기업이다. 역시 코에이도 이러한 PC 워 게임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마이컴용 워 게임의 등장과 시부사와 코우

그런데……여기서 「굉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즉, 시부사와 코우 씨의 첫 작품으로 PC 워 게임인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1981년에 출시되었는데 키야 통상이 작업한 『B1 핵폭격기』 등의 게임이 출시된 시기는 놀랍게도 1982년이었다.
 즉, 코에이의 게임은 해외 PC 워 게임의 이식보다 먼저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다――「세계 최초」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야말로 「일본 최초」의 마이컴용 워 게임.  이렇게 조사해 보니 역시 시부사와 코우씨는 굉장하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게임의 기원을 다루는 본 연재에서 「갑자기 천재가 발명했습니다!」라는 결말을 내리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을 것 같다. 


 그럼 일단 끊어진 단서를 되살리는 힌트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부사와 코우 씨가 처음으로 구입한 퍼스컴이 MZ-80C였다는 증언. 그리고 두 번째는 『카와나카지마 전투』의 게임 시스템이다. 여기는 필자의 견해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역사 SLG의 1인자인 도쿠오카 마사토시 씨의 (기사의)에서 지혜를 빌리도록 하겠다. 


 실제로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이 「각도 입력」이라는 것은 그 당시까지는 드문 UI도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이해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적는데 광자 어뢰의 사격 방향을 각도 입력(에 가까운 UI)를 사용해서 쏘았던 사람도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4Gamer.net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복각되어 가와나카지마 전장을 방문해 보다』에서 인용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스타트렉』――미국에서 탄생하여 수차례 영화화된 SF 드라마를 주제로 한 마이컴 게임이다.


(이미지 출처 『스타트렉 BEYOND』 공식 사이트) 
원래는 미니컴퓨터용 프리 게임이었지만 수많은 뜻있는 팬들이 마이컴으로 이식했는데 그중 한 기종으로 시부사와 코우 씨가 사용했던 MZ-80C도 있었다. 
 관계가 험악했던 행성 연방과 클링온 제국은 마침내 전면 전쟁에 돌입하고 우주선 USS 엔터프라이즈 호의 선장이 된 플레이어는 겨우 한 척으로 은하 곳곳에 있는 적을 물리친다……원래의 소재였던 드라마는 이 정도로 심플하지도 호전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워 게임에서의 지상의 대결을 우주로 갖고 간다면 이런 형태가 될 것이다. 
 이 게임 속에 원래의 정보 출처가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부사와 코우 씨의 발명은 오히려 게임 시스템과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부사와 씨는 수입 게임을 모방하여 해외 전쟁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전국 시대를 주제로 골랐다. 일본인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중세나 유럽의 전투보다 소설이나 대하드라마를 통해 친숙한 전국 시대가 보급되기 쉬울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착안점이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일본산 워 보드 게임(비전원계)은 8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졌으나 전국 시대를 주제로 한 것은 소수였고 86년에 츠쿠다 하비가 「전국 합전 시리즈」를 출판하기 전까지는 메이저한 시장도 아니었다. 그 시장성을 가장 빨리 인식한 사람은 분명히 PC 분야에서 등장한 시부사와 코우 씨였다. 

 그렇다곤 하나 시부사와 씨가 전국 시대를 고른 것을 「시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속된 이유로 설명하긴 좀 그럴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그저 전국 시대 게임을 직접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뿐. 이것이야말로 「낮에는 본업, 밤에는 직접 게임을 만들어 즐긴다」가 더해져 원래는 염료와 공업 제약 도매상이었던 코에이를 게임 메이커로 전환시킨 인물답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야말로 「덕업일치」의 선두주자였던 시부사와 코우 씨. 게다가 그가 좋아하는 역사물은 동시에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후 『투자 게임』, 『지저 탐험』, 해외 워 게임의 흐름을 계승하는 『컴뱃』 등을 거쳐 1983년에 초대 『노부나가의 야망』이 탄생한다. 이 작품은 코에이의 전국 시대물 두번째 작품일 뿐 아니라 SLG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연 문이기도 했다……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 회를 기대해 주십시오. 


여담~『언덕 위의 구름』과 워 게임, 주사위 눈을 속인 일본군의 최후

본문 속에서 「작전 연습」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인과도 인연이 깊은 재미있는 여담이 있으므로 소개한다. 
 이 「작전 연습」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도 독일에서 초청한 클레멘스 맥켈 소령에 의해 육군 설립 시에 도입되었다. 이론보다 실천적인 작전 입안을 중시한 방침의 일환으로 이용된 것이다. 하지만 육군에 정착되지는 못했다. 
 그럼 실제로 일본군 현장에 작전 연습을 정착시킨 것은 누구일까? 바로 러일전쟁 당시의 해군 참모인 아키야마 사네유키, 그렇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인 『언덕 위의 구름』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었다. 아키야마는 미국 주재 무관으로 현지에 체류하며 미국-멕시코 전쟁을 참관했고 이 때 견문하면서 가장 감탄했던 것이 작전 연습이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Amazon

 
 이는 프로이센의 육전을 대상으로 한 것을 기초로 한 해전용 수정판이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해군 훈련에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 것이 미 해군에 채택된 것이다. 
 아이들 장난감과 같은 각종 군함을 큰 그림판 위에 올린다. 군함은 목제로 되어 있고 새끼 손가락만큼 작다. 그러나 미카사라면 미카사답게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적의 전함 보로디노가 침로를 이렇게 잡고 몇 노트로 가고 있다. 구축함 세 척을 거느리고 있다」라고 상정한다면 거기에 보로디노급 모형을 놓는다. 
 
시바 료타로 저 『언덕 위의 구름』(1999・문예춘추)에서 인용
 
 시바에 따르면 일본이 영국 해군에서 배운 것은 도상(図上) 연습. 즉 해도 위에  적색이나 청색 연필로 기입하며 작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잠시동안 채택된 작전 연습이 영국에서는 「아마추어틱하다」라며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전 연습은 전략의 전체상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어디를 개선해야 할 것인가」라는 다음 액션으로도 연결하기 쉬웠다. 아키야마는 그러한 장점을 높게 평가하고 귀국 후 군에 「채택해야 한다」고 백방으로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한 아키야마가 귀국한 후 몇 년 후인 1904년, 그가 참모로 참가한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했다. 물론 여기에 작전 연습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는가는 불명확하지만 「도상 연습(図上演習)」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일본 해군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음은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아키야마의 후배들이 이를 적절한 형태로 계승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세월이 흘러 1942년 5월, 진주만 공격이 성공한 기세를 타고 일본 해군이 미국과 영국의 함대를 격파하던 시절의 일이다. 
 단기 결전을 목표로 했던 일본은 미국 태평양 함대에 남았던 항공모함 3척을 박살내기 위해 해군 지도부 100명을 히로시마의 구레 군항(『이 세상의 한 구석에』의 무대)에 모여 미드웨이 공략 작전 도상 연습을 실시했다. 
 장소는 바로 전함 야마토의 함상이었다. 그 자리에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장관도 참가했으며 통감(당시의 도상 연습은 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우가키 참모장이라는 그야말로 쟁쟁한 인사들이 참가한 호화로운 도상 연습이었다.


 ――그런데 막상 주사위를 굴려본 결과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다. 미군에게 기습을 당한 일본군은  항공 모함 2척 침몰, 또한 1척이 대파라는 결과를 맞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심판 역할의 우가키는 「미군의 명중률은 1/3로 평가한다」며 피해를 과소 평가해버렸다. 또한 공격으로 가라앉았을 항공모함 카가가 떠오르고 다음으로 피지, 사모아 해전에도 참가했다고 하는 그야말로 대충대충의 시뮬레이션이 펼쳐졌다.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주사위 눈을 속이는 자는 그에 대한 벌을 받는다」――. 이러한 엉터리 시뮬레이션의 대가는 위와 같은 말 한 마디로 정리하기엔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왜냐하면 훗날에 벌어진 현실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거의 동일한 결과가빚어졌으니 말이다. 


덧글

  • ㅇㅇㅇ 2019/09/28 11:50 # 삭제 답글

    모바일에서 제대로 읽기가 힘드네요 가독성문제가 아니고 문장이 겹치고 짤려서 안보입니다 (아이폰 사파리)
  • isao 2019/09/28 14:02 #

    죄송합니다. 웹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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