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명작인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발매 당시에는 '이렇게 어려운 게임을 누가 플레이하겠냐?'라고 혹평을 받았다 게임S/W관련


명작 TV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세상에 나온지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했다.

1970년대 말, 일본 열도의 100엔 짜리 동전이 부족해질 정도로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 적 캐릭터인 인베이더는 지금도 타이토의 심벌로서 일본 각지의 직영 게임 센터 「타이토 스테이션」에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많은 슈팅 게임에 영향을 준, 그야말로 원점이다.

그러나 전설적인 이 게임은 발매되기 전에는 사내에서 거의 기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은 개발자인 니시카도 토모히로(西角友宏) 씨에게 알려지지 않은 험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KENJI ANDO
타이토 스테이션 이케부쿠로 니시구치 점에 내걸린 「스페이스 인베이더」 캐릭터(2018년 3월 촬영)

 

■상사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더군」...

「니시카도, 이번 건은 좋지 않았어. 그저 그랬다더군」

1978년 6월, 상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타이토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업자로부터 불평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자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하네』라고는 생각했어요」

니시카도 씨는 담담히 당시를 회고했다. 타이토 본사에 있는 관리직이나 『상품의 출시 여부』를 결정하는 높으신 분, 게임 센터에 게임을 납품하는 업자에게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슈팅 게임은 대략 3분 이라는 일정한 시간 내에 일방적으로 적 캐릭터를 공격한다고 하는, 이른바 상쾌함을 중시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게임은 적들도 공격해 오고 게임에 익숙하지 않으면 10초나 20초 정도면 죽고 말죠. 3분 동안 즐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어요. 회사 내에서나 업자로부터는 『이런 어려운 게임은 불평만 들을 것이고 아무도 즐기지 않을 거다』라는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AI vs 인간」이라는 혁신을 도입하다

타이토
「스페이스 인베이더」 화면 사진

니시카도 씨는 1969년에 타이토의 자회사인 퍼시픽 공업에 입사했다. 미국의 아타리가 개발하여 세계 최초로 히트한 비디오게임인 「퐁」(1972년)에 충격을 받아 일본산 TV 게임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커」, 「스피드 레이스」, 「웨스턴 건」 등을 출시한 후 입사 9년차인 34세 때 개발한 게임이 바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다. 

이 게임에서 획기적이었던 점은 적도 공격을 해온다는 점이다.

적 캐릭터인 외계인도 빗발치듯 총알을 쏘아대므로 플레이어는 총알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가장 초기의 게임이었다. 

지금은 PC 등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일본 최초로 도입한 TV 게임이었다. 개발 도구까지 직접 제작하며 1년 반에 걸쳐 복잡한 사고 루틴을 프로그래밍했다. 

니시카도 토모히로 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적이 플레이어를 겨냥해서 쏜다고 하는 사고 패턴을 기존의 회로에 탑재하려고 했더니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해서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적 캐릭터가 플레이어 캐릭터의 위치를 노리고 총알을 쏘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혁신적인 게임 내용에 대해 간부나 업자들은 탐탁치 않게 반응한 한편으로, 개발 팀의 젊은 사원들은 크게 호평했다. 

「젊은이들은 높게 평가했어요. 제 주변의 개발자들에게 즐기게 했더니 모두 정신 없이 빠져들어 플레이했습니다. 20대부터 저와 동년배인 30대 초반 정도에게는 반응이 좋았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야말로 사상초유의 히트를 기록했다. 일본 각지에 「인베이더 하우스」라 불리는 게임센터가 줄지어 세워졌고 100엔 짜리 동전은 쉴새없이 게임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히트의 절정기였던 1979년 4월에는 100엔 짜리 동전이 발행된 숫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았을 정도다. 

어느 날, 니시카도 씨가 타이토 본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사옥 앞에 게임 센터에서 100엔 동전을 운반해온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트럭은 적재량이 초과되어 타이어에 펑크가 나 있었다고 한다. 

 

■크게 히트할 수 있었던 이유는?

TAITO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기는 사람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그 당시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니시카도 씨는 「스릴」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설명했다. 

「『적이 공격해 온다』라는 요소에는 스릴이 있죠. 그 스릴을 젊은 층이 수용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나이든 게임 업계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달려드는 젊은 층은 『게임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고정 관념이 없었던 만큼 재미있게 즐겼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심플함」 덕분이라고 한다.

「내 캐릭터를 움직여서 총알을 쏘는 방식이니까 누구나 금방 즐길 수 있어요. 심플해서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동일하게 즐길 수 있었죠. 옛날 게임 중에는 그런 것이 많았어요. 요즘 게임은 전작을 즐기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즐길 수 없는 것도 많아졌죠」

 

■ 재미있는 게임은 제한된 상황에서 비롯된다 

TAITO
1978년 당시의 게임 센터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히트한 이후 일본의 TV 게임은 세계적으로도 주류로 올라섰다. 5년 후인 1983년에는 닌텐도가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를 내놓아 세계를 석권했다. 일본제 게임이 다수 히트한 것은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게임성때문이라고 봅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추구해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일본의 장기죠. 하지만 요즘에는 CG가 주류를 이루면서 영상 표현력이 중시되고 있죠. 그런 분야는 미국 쪽이 강하죠. 『메모리는 이 정도』, 『컴퓨터 기능도 이 정도의 제한을 두고 만드시오』하는 상황에서 일본인은 다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인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그렇구나 싶었다...... 일본의 게임 디자이너는 자유분방한 환경보다는 제한된 환경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니시카도 씨의 분석이었다. 게임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됨으로 인해 자유도가 넓어졌다. 그것이 반대로 게임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과거의 일본 게임은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궁리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궁리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옛날에는 비쌌던 메모리도 공짜 수준이 되었죠. 사운드도 얼마든지 낼 수 있게 되었고요. 하지만 『제한이 없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게임을 제작하기 어렵게 된 것이죠」

니시카도 씨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니시카도 씨는 제한 요소가 다양한 스마트폰용 게임에 흥미를 느낀다며 그 중에서도 플레이어가 그린 물체를 사용해서 과제를 클리어하는 「Q」라는 게임을 정신없이 빠져서 즐겼다고 한다.

 

■「40년이 지나 다시 새로운 것이 되다」

TAITO

40년 후 이렇게 타이토 본사의 응접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상황에 대해 니시카도 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니시카도 씨는 시원스런 말투로  「그 당시에는 (40년 동안이나 화젯거리가 될 것이라고는)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더욱 재평가가 진행되었다고 봅니다」라고 회고했다.

「사람이란 조금 오래된 것은 유행에서 뒤쳐진 것으로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오래된 것』은 반대로 신선하게 느끼곤 하지 않습니까? 『스페이스 인베이더』도 발매되고 나서 10년〜20년 후 정도에는 『이제와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니』라면서 속편을 만들어도 사내에서 탐탁치 않아 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러던 것이 40년 지나 다시 새로운 것이 되었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니시카도 토모히로 씨의 프로필

안도 켄지
니시카도 씨

1944년 3월 31일 오사카 부 기시와다 시 출신. 도쿄전기대학을 졸업한 후 오디오 기기 회사를 거쳐 1968년에 타이토의 자회사인 「퍼시픽 공업」에 입사.

게임 센터용 TV 게임으로 「스피드 레이스」와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2018년 현재 타이토의 고문으로 젊은 사원들에 유익한 조언을 하고 있다. 

2월 23일에는 프랑스의 게임 역사 연구가가 저술한 그의 전기인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든 사나이 니시카도 토모히로에게 묻다」가 출간되었다. 


덧글

  • 레이오트 2018/04/08 21:52 # 답글

    그 당시에는 비디오 게임이라는게 (지금에 비하면은) 엄청나게 생소한 분야였으니 저런 반응 나올만도 하죠.
  • 고라파덕 2018/04/09 12:49 # 답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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