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후 출판된 일본의 「민주주의」 교과서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나? 일본시사관련


근간 『일본 회의-전전 회귀에 대한 정념』(슈에이샤 신서)이 발매된지 4일만에 중판을 찍으며 4만 5천부를 돌파한, 뛰어난 전사・분쟁연구가인 야마자키 마사히로 씨의 새 연재입니다. 일본의 근현대사를 세계로부터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자만」도 「자학」도 아닌 역사적으로 재검토하는 내용입니다.  『5번의 전쟁을 통해 해독하는 일본 근현대사』의 중심 내용을 소개합니다. 제10회는 일본국헌법의 성립 과정과 전후 교과서에 적힌 「민주주의」의 내용을 해설합니다. 


일본국헌법은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헌법”이었나?

맥아더와 GHQ는 일본에 대한 점령 통치를 개시한 직후부터 전후의 일본을 민주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지 시대 이래 시행된 일본의 헌법인 「대일본제국헌법」은 봉건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인권」이나 「자유」를 국민에게 보장하지 않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는 처음에는 전 총리이며 패전 후에도 국무대신 지위에 있던 고노에 후미마로에게 새로운 헌법을 준비할 것을 시사(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 내에서 「청일전쟁을 시작했을 당시의 총리로서 전범으로 소추될 가능성이 높은 고노에가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것이 합당하느냐」하는 의견이 있었기에 1945년 10월 9일에 발족한 시데하라 기주로 내각이 신헌법 작업을 계승했습니다. 

시데하라 내각은 상법학자인 마쓰모토 조지 국무대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문제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헌법 초안 작성을 명했습니다. 마쓰모토는 맥아더와 GHQ가 요구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일부 도입하면서도 주권은 천황에게 있다는 기본 원칙은 그대로 남기는 등 전체적으로는 「대일본제국헌법을 개작한」 수준의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그래서 맥아더는 극동위원회의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GHQ에서 새로운 「헌법 초안」을 만들기로 방향을 전환하고 민정국장 코트니 휘트니 준장을 리더로 하는 25명의 스태프가 1946년 2월 4일부터 헌법 문안의 작성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헌법학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민간인이 기존에 작성했던 헌법 초안이나 유럽 여러 나라의 헌법 등을 참고로 하여 시안을 정리했습니다. 

이들 참고 자료 중에 특히 큰 의미를 가졌던 것이 1945년 12월 26일에 민간 헌법연구단체「헌법연구회」가 발표한 「헌법초안요강」이었습니다. 사회통계학자인 다카노 이와사부로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이 헌법초안요강에는 훗날의 「일본국헌법」의 골격이 되는 「국민주권」,「천황은 국민의 총의에 기초하여 국가적 의례를 담당하는 존재에 머무른다」,「남녀평등」,「기본적 인권과 언론・표현의 자유 보장」 등이 포함되었으며 발표되고  5일 후인 12월 31일에는 GHQ가 서둘러 이 초안의 영역판을 작성하여 내용 연구를 개시했습니다. 

위와 같은 경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국헌법은 비교적 단순한 「GHQ의 강요」도,「사정을 모르는 미국인이 몇 일 동안 적당히 만든 물건」도 아닌, 맥아더와 미국 정부의 의향을 강하게 반영하면서도 여러 일본인의 의견이나 요망을 내용에 반영시킨 후 제국의회(국회)의 정통적인 심의를 거쳐 작성된 「일본 미국 합작 신헌법」이었습니다. 

패전 3년 후에 간행된
「민주주의」 교과서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나?

일본국헌법이 시행된지 1년 5개월 후인 1948년 10월, 문부성은 중학・교교생용 교과서『민주주의』(상권)를 간행하여 전국의 학교에 배포했습니다. 이 교과서는 법학자인 오타카 도모가 중심이 되어 편집된 상하 2권으로 구성으로 내용은 전후의 일본 국민이 전쟁 전과 전쟁 기간 중의 「국체(国体)」를 대신할 국가의 기본적인 틀로써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평이한 문장으로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1장「민주주의의 본질」에서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정치 형태」로 형식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우선 그 근본 정신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각각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정치 상의 문제나 의원 후보자에 대해서 찬성이나 반대 투표를 던지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민주주의의 마음가짐이다 라는 것이 이 교과서가 가르치는 「민주주의의 본질」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쟁 전, 전쟁 중의 국가신도체제 하의 일본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라는 깊은 반성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는데 전쟁 전과 전쟁 중 그리고 패전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당시의 일본인 입장에서 이 설명은 매우 리얼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그저 권력에 굴복해서 사는 삶을 감수해 왔을까. 옳다고 믿는 것도 주장할 수 없고 『억지가 통하면 도리가 물러선다』라고 말하며 『힘 앞에서는 굴복해라』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포기해 왔던 것일까」
「이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노예라고 꺼리낌 없이 지껄이는 태도이다. 인류를 큰 불행으로 떨어뜨리는 전제주의나 독재주의는 이러한 민중의 태도를 양분으로 삼다가 크게 설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체득하기 위해서 우선 배워야 할 것은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신념에 충실해야 할 것 이라는 정신인 것이다」

또한 문부성은 「일본국헌법」의 제21조에 기록된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떠한 가치를 갖는지 이 교과서를 통해 알기쉽게 해설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존중하는 자유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언론의 자유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판단만큼 위험한 것이 없음은 일본인이 최근의 불행한 전쟁 중 다수 경험한 상황이다. 따라서 신문은 사실을 적고, 라디오는 사실을 전할 책임이 있다. 국민은 사실에 기초하여 각자 양심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한다」

이상과 같이 일본 패전으로부터 3년 후에 문부성이 출판한 『민주주의』 교과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 사고나 가치판단을 맡기지 않고 개인으로서 주장이나 판단, 행동을 실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에 기초하여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이 국민의 올바른 정치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 교과서는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교과서를 통해 전후의 일본인이 서구와 같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길을 똑바로 진행했는가 하면 그렇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전과 전쟁 중과 비교하면 개인의 존중이라는 면에서는 상당히 나아지긴 했지만 자신이 소속된 회사 등 「집단」에게 사고나 가치 판단을 맡기는 일을 그다지 「나쁘다」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그러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전후의 일본에도 다수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전후의 일본 사회에서 사회제도적인 민주주의는 왜 어중간한 상황에서 발달하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사회를 양분한 「동서냉전」상황이 동아시아에서 격화되었다는 일본의 주변 환경도 일본의 민주화에 브레이크를 건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덧글

  • 레이오트 2016/09/03 21:45 # 답글

    무엇보다 동서냉전 당시 미국에 철저히 영합하여 전쟁범죄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발급받아 권력을 유지한 현 일본 우익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협하는 '민주주의'가 발호하게 놔둘 리 만무하죠.
  • RuBisCO 2016/09/04 01:16 # 답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본 민중 스스로였죠.
  • 골든 리트리버 2016/09/06 12:27 # 답글

    교과서 답지 않게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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