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는 정말 성질이 급하고 냉철한 사람이었을까? 일본서적 소개



 어떤 사람에 대해 조사할 때는 한 가지 시점으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가족의 입장에서 본 그 사람, 친구의 입장에서 본 그 사람, 업무 관련자의 입장에서 본 그 사람의 이미지가 각각 전혀 다를 수 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불쾌한 사람」이라 비판할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증언할 수도 있다.  즉, 한 가지 시점을 비판 없이 수용하곤 아는 척 하는 것은 위험하다.  

역사상의 인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사에서 유명한 위인 중 한 사람인 오다 노부나가는 매우 성급하고 잔학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 합리적이자 천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땠을까?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기록 중에서 신뢰도가 높은 것은 드물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료 중 하나가 노부나가를 섬겼던 오타 규이치가 저술했다고 하는 『신초코키(信長公記)』다. 그 외에는 본인이 적은 편지가 남아있으나 또 하나의 중요한 사료에서는 좀처럼 노부나가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료」란 포르투갈 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日本史)』이다. 

■『일본사』가 저술된 목적은 기독교 때문이었다?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알려지지 않은 오다 노부나가(ルイス・フロイスが見た 異聞・織田信長)』(時空旅人編集部編、三栄書房刊)는 이러한 『일본사』를 통해서 노부나가의 위업과 인물상을 밝힌 책이다. 
프로이스가 『일본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덴쇼 11년(1583년)이다. 포르투갈 국왕으로부터 일본 기독교 포교 역사를 쓰도록 명령을 받은 예수회가 프로이스에게 의뢰하여 쓰여진 것이다. 그 기반이 된 것은 프로이스가 모국과 동포에게 보냈던 편지와 보고서였다. 『일본사』는 기독교 포교를 위한 보고서를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3부로 구성되며 현재 발견된 것은 덴분 18년(1549년)에서 덴쇼 6년(1578년)까지 엮은 제2권과 덴쇼 6년에서 분로쿠 3년(1594년)까지 기록이 남은 제3권이다. 즉,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일본 방문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까지 전국 시대의 종결을 망라한 중요한 사료이다.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알려지지 않은 오다 노부나가』에서는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대해 외국인의 시점에서 뛰어난 제3자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다분히 편견이나 오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권력자의 동향뿐 아니라 문화나 생활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도 언급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오다 노부나가는 벤처 기업 사장과 비슷하다? 

그럼 프로이스는 노부나가를 어떠한 인물로 파악했을까? 책 내용을 살짝 보도록 하자. 

우선 외모와 생각부터 보자. 중키 정도이며 날씬함. 수염은 적고 목소리는 매우 좋음. 극도로 전쟁을 좋아하고 군사 수련에 열심히 힘쓰며 명예심이 높고 정의에 대해 엄격하다고 프로이스는 평했다. 또 노부나가는「성질이 급하다」고 알려졌는데 그 부분은 어떨까? 「탐욕스러지 않고 전투에 극히 노련하며 매우 성급하여 격분은 하지만」에 이어서 「평소에는 그렇지도 않았다」라고 나온다. 성질이 급하긴 하지만 「항상 화난」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또한 「극히 비천한 부하와도 친하게 이야기를 했다」라는 부분에서 출신 가문에 관계 없이 다른 사람과 접하는 노부나가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지나칠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가신들의 봉사를 받았고 외부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았다」라는 부분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이미지와 동일하다 할 것이다. 

역사가인 이소다 미치후미 (磯田道史) 씨는 『일본사』에서 나온 노부나가에 대해 요즘 시대로 치면 「벤처 기업 사장」의 특징과 비슷하다고 언급한다. 노부나가는 직접 모든 일을 해치우는 사람으로 성급해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벤처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지적에 수긍할 것이다. 이소다 씨는 동서고금의 위인 중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 중에 이러한 타입이 많다고 지적한 후 「순환기 계통의 질병으로 쓰러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한다. 

혁명아인 오다 노부나가는 항상 시대가 원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제시해왔다. 그러나 그 진정한 모습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형적인 타입의 노부나가와는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한 부분은신뢰도가 높은 여러 사료를 읽은 후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신초코키』나 『일본사』 기록에는 집필자의 해석과 의도가 들어가 있다. 그러한 점을 감안한 후 읽음으로써 진정한 노부나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알려지지 않은 오다 노부나가』에서는 노부나가 외에 히데요시나 아케치 미쓰히데 등 유명한 장수에 대한 프로이스의 평가도 나온다. 의외의 평가를 받은 인물도 있으니 궁금한 분은 꼭 읽어보시길. 

(新刊JP編集部)


IBM이 「사람의 마음을 읽고 커피를 배달하는 드론」의 특허를 취득 일반 H/W관련



드론에게 커피 등의 음료를 매달아 날려서 손을 든 사람이나 졸린 표정의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특허가 승인되었습니다. 

IBM's Barista Drone Patent Brings Biometric Sensors and Auctions to Coffee | Inverse
https://www.inverse.com/article/48348-ibm-coffee-drone-barista-patent

이 특허는 IBM이 2015년 12월 22일에 출원한 것으로 약 2년 반 후인 2018년 8월 7일에 승인되었습니다. 특허 기술의 명칭은 「Drone Delivery of Coffee Based on a Cognitive State of an Indivudual(개인의 인지 상태에 기초한 커피 배달)」이라고 합니다.

Patent Images



커피 배달 드론(Fig.1)은 다음 그림과 같이 기체 하단에 용기를 매달고 그 속에 커피가 들어간 컵을 담고 비행합니다. 기체에는 카메라 등으로 사람의 제스처나 표정을 판독할 수 있는 제어 장치(Fig.2)가 탑재됩니다. 커피는 홀더(230)에 고정되며 그 외에 누수 방지 용기(242)를 와이어 류(244)로 매달아 운반하는 방법이 고안되어 있으며 커터(250254)로 와이어를 자르거나 릴(252)을 오르내리면서 전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드론은 커피뿐 아니라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전달하여 사람들에게 활기를 제공하겠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습니다. 기체에 탑재된 카메라로 어떤 특정 제스처를 하는 사람(400A)을 확인하여 음료를 전달하고 그 외에 여러 드론(200A~C)이 비행하고 있는 경우에도 제스처를 한 사람(400C)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드론(200C)이 그 사람에게 가도록 제어하는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스처뿐 아니라 활동 수준이 떨어진 사람을 드론이 감지하여 커피를 전달함으로써 활기를 제공한다는 목적도 있습니다. 기체의 카메라가 졸음과 싸우는 사람(400)을 발견하면 자동으로 그 사람에게 가서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미 해병대가 3D 프린터로 콘크리트 건물을 24시간 만에 건설하는 기술을 개발 과학관련



3D 프린터를 통해 레미콘 층을 얇게 쌓아서 여러 명의 병사가 머물 수 있는 막사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기존에는 10명의 병사가 5일 동안 건설했던 막사를 최소 24시간에 지을 수 있습니다. 

Marines 3D-print concrete barracks in just 40 hours | Fox News
http://www.foxnews.com/tech/2018/08/29/marines-3d-print-concrete-barracks-in-just-40-hours.html

3D 프린터로 세워진 막사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얇은 콘크리트 층을 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범 케이스라서 그런지 지붕은 설치되지 않았으나 물결 모양으로 형성된 벽 부분에서 기존의 건설과는 다른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미 해병대의 적층 제조팀이 제1해병원정군과 공동으로 U.S. Army Engineer Research and Development Center(육군기술자연구개발센터)가 개발한 세계 최대의 콘크리트 3D 프린터를 사용해서 실현한 것입니다. 이번 실험에서는 면적 500제곱 피트(약 14평)의 막사를 약 40시간에 완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번 실험에서는 약 10년 전에 나왔던 PC로 3D 프린터를 제어하여 건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첫 시도였기에 기술자의 체크 작업과 콘크리트를 보충하면서 건설했기에 40시간이 필요했으나 자동 콘크리트 보충기기를 사용한다면 24시간 내에 건설을 마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 나온 형상이 3D 프린터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둥근 막대 모양의 콘크리트를 부드러운 상태에서 사출하면서 층을 쌓아 올렸는데 잘 관찰하면 벽과 벽 사이에 틈새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콘크리트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으므로 물자가 제한되는 전장에서도 효율적으로 막사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콘크리트는 원료를 제조하면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되므로 사용량을 줄인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절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가장 큰 장점은 건설에 필요한 인원을 줄여서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10명의 병사가 5일에 걸쳐 건설했던 막사를 거의 자동에 가까운 기계에 맡겨서 전선 근처에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도 병사의 손실을 최소화함으로써 부대의 능력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목표와 합치한다 볼 수 있습니다.



닌텐도의 명작 하드웨어 「슈퍼패미컴」은 어떻게 세련된 음악을 구현할 수 있었나? 게임H/W 관련


by Matthew Paul Argall

닌텐도의 게임기 「슈퍼패미컴」은 1990년 11월 21일에 일본에서 발매되었고 이듬해인 1991년 8월에는 북미용 사양인 「Super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SNES)」이 발매되었습니다. 슈퍼패미컴은 당시의 게임기로서는 뛰어난 그래픽과 사운드 능력을 자랑하면서 전 세계에서 4910만 대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슈퍼패미컴과 SNES의 음악 성능을 Nerdwriter1이 다음과 같은 동영상을 통해 해설했습니다.

How Music Was Made On Super Nintendo - YouTube


SNES과 슈퍼패미컴은 본체 디자인・카세트 형상・전원・영상 출력은 다르지만 탑재된 칩은 동일합니다. 




이것이 SNES의 기판입니다.


위 아래로 배치된 2개의 검은 직사각형 칩이 슈퍼패미컴과 SNES에 탑재된 내장 음원입니다. 이 2개의 칩은 BGM이나 효과음을 재생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슈퍼패미컴이 발매된지 약 30년이 흘렀지만 그 시절의 게임 음악 중에서는 명곡으로 평가를 받는 음악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 월드」의 음악은 가장 유명한 사례라 할 수 있겠죠.


그 외에도 우에마쓰 노부오 씨의 「파이널판타지VI」의 음악이나……




코나미구형파구락부의 슈퍼패미컴판 「악마성 드라큘라」의 음악 등 슈퍼패미컴의 뛰어난 사운드 성능을 잘 살린 명곡도 다수 존재합니다. 


슈퍼패미컴에 탑재된 내장 음원은 2개의 칩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SONY의 SPU(Sound Processing Unit)인 SPC700입니다.

 



두 번째는 S-DSP A라 불리는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입니다.


이전 세대 기종인 패미컴이나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은 구형파 2계통・삼각파 1계통・노이즈 3+1채널과 DPCM 음원 1채널, 총 5채널로 구성되며 실질적으로 3화음의 음악까지만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슈퍼패미컴과 SNES는 동시발음수가 8채널입니다. 패미컴과 비교하여 다양한 음색을 함께 구현할 수 있으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동시 발음할 수 있는 8채널은 샘플링도 가능하므로 게임 음악 작곡가가 선호하는 음색을 게임 내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4년에 슈퍼패미컴으로 발매된 「슈퍼 동키콩」에서 스테이지를 이동할 때 나오는 BGM「THE MAP PAGE」의 채널은 이렇게 편성되었습니다. 


패미컴과 비교해서 슈퍼패미컴은 엄청난 발전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SPC700의 SRAM 용량은 64KB에 불과했습니다. 3분 가량의 mp3 파일이 대략 6MB라고 보면 이런 용량은 너무나도 작았죠. 


64KB라는 용량을 고려하면 샘플링 가능한 시간은 음색과 효과음을 모두 합쳐 불과 5초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사용 가능한 샘플링 데이터를 담으려면 데이터 그 자체를 0.1초 단위로 짧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힙합 분야에서는 과거에 나왔던 곡에서 불과 1, 2초만 샘플링해서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과 몇 초의 짧은 데이터를 조합하여 음악을 제작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슈퍼패미컴 내장 음원의 한계에 도전했다는 의미에서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슈퍼 동키콩」의 수중 스테이지 BGM「Water Music」은 몇 개의 짧은 데이터를 연결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은 그 당시 영국의 게임 개발사인 「레어」에 근무했던 데이빗 와이즈 씨입니다.


와이즈 씨는 1990년에 등장한 KORG의 신디사이저 「Wavestation」을 참고했습니다.



KORG・Wavestation의 큰 특징은 매우 짧은 파형 데이터를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파형을 제작할 수 있는 「웨이브 시퀀스」 기능입니다. 와이즈 씨는 이 웨이브 시퀀스 기능과 동일한 처리를 게임 내에서 구현하여 여러 개의 짧은 샘플링 데이터로 구성된 긴 샘플링 데이터를 제작하기 위한 연구를 펼쳤습니다. 


물론 슈퍼패미컴은 Wavestation의 성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채널별로 합성할 파형 데이터를 모두 직접 입력해야 했습니다. 와이즈 씨는 「Water Music」1곡을 위해 5주간에 걸쳐 음표・옥타브・샘플・음량・페이드・에코 등 모든 파형 데이터를 게임 프로그램 내에 입력했습니다. 




매우 귀찮은 작업이었으나 그 덕분에 「Water Music」은 슈퍼패미컴 게임 음악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곡으로 지금도 계속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와이즈 씨는 그와 동일한 방법을 1995년에 발매된 속편 「슈퍼 동키콩2」에서도 이용했습니다.



슈퍼패미컴이 게임 음악 작곡가 입장에서 다양한 한계를 가진 기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2개의 칩과 64KB 용량의 SRAM, 그리고 수많은 16진수 코드를 이용해야 하는 내장 음원의 제한은 작곡가들의 창조성을 키웠으며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할 수 있겠습니다. 



로마 황제들의 암살은 당시의 강우량과 관련이 있다는 학설이 발표 해외시사관련


by Egisto Sani

기원전 27년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약 500년 동안 이어진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 중 약 20%는 반란으로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암살이나 반란의 직접적인 동기는 흉폭한 정치나 권력 투쟁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강우량의 감소」가 있다는 학설이 발표되었습니다.

The Weird Reason Roman Emperors Were Assassinated
https://www.livescience.com/63277-roman-emperor-assassinations.html


Shocks to military support and subsequent assassinations in Ancient Rome - ScienceDirect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165176518302532


미국 브록 대학교의 경제학과 조교수인 코넬리우스 크리스찬 씨는 2011년에 발표된 연구 논문을 기초로 고대 로마의 기후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견된 나무의 화석 수천 점을 조사하여 과거 2500년 동안 봄의 강우량을 계산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 로마 황제 중 누가 언제 어떻게 암살당했는가」를 강우량 데이터와 비교 대조한 결과 「강우량이 적을 수록 병사들에 의한 반란이나 암살이 발생하기 쉽다」라는 관계가 도출되었습니다. 나아가 크리스찬 씨는 이러한 상관 관계를 볼 때 당시의 로마 황제가 정치를 펼칠 때 고대 로마군의 군사력에 의존했었다는 내용도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네 명의 황제의 해 당시 「네 황제」 중 3번째인 비텔리우스 황제는 서기 69년에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반란으로 베드리아쿰 전투에서 패주하다가 살해당했습니다. 비텔리우스 황제가 암살당한 서기 69년은 로마에서 가뭄이 발생했던 해기이도 하며 크리스찬 씨는 「강우량이 적다는 것은 식량난에 빠졌음을 의미합니다. 로마군이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상황이 잠재적으로 반란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비텔리우스 황제는 사치에 빠졌으며 막대한 식비가 쓰였다고 하며 기아로 고통받던 시민의 반감을 산 것이 반란의 계기가 되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반란이나 암살이 강우량의 감소와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네르바 안토니우스 왕조 최후의 황제인 콤모두스 황제는 서기 192년에 검투사에게 암살당했으나 이 해에는 가뭄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찬 씨는 「강우량의 감소가 암살을 발생시키는 유일한 요소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강우량은 어디까지나 암살이나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변수 중 1가지에 불과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by Institute for the Study of the Ancient World

과거에 「화산 활동이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종말에 영향을 미쳤다」라는 논문을 발표한 예일 대학교의 조셉 매닝 고고학 교수는「크리스찬 씨의 연구는 강우량의 감소가 로마 황제의 암살에 영향을 주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토대는 되겠지만 이 가설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크리스찬 씨의 연구에 대해 브라운 대학교의 조교수인 조너선 코넌트 씨는 「강우량이 반란이나 암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다만, 로마 제국은 가뭄 이외에도 극심한 인플레이션・돌림병・주변 국가와의 전쟁도 경험했기에 이러한 전체 요소가 제정의 안정성을 저하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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