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영어 번역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해외시사관련


by Olga Berrios

일본 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트윗글을 하루키 스타일로 바꿔주는 생성기가 등장할 만큼, 독특한 문체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또한 1인칭을 구분해서 사용하여 독자의 감각을 조종하는 듯한 치밀한 문장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하루키의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의 복잡한 과정에 대해서, 문학 관련 뉴스를 다루는 미디어인 Literary Hub가 해설했습니다. 

Inside the Intricate Translation Process for a Murakami Novel | Literary Hub
https://lithub.com/inside-the-intricate-translation-process-for-a-murakami-novel/

알프레드 번바움 씨가 영어 번역을 담당한 「A Wild Sheep Chase(양을 둘러싼 모험)」은 1989년에 고단샤(講談社) 인터내셔널(KI)을 통해 출판되어 「놀라운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KI의 편집자는 그 당시 같은 작가의 작품을 연속해서 번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번역할 준비에 착수했었다고 합니다. 

번역자인 번바움 씨는 「A Wild Sheep Chase」와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번역에 몰두했던 시간에 대해 「편집자와 번역자, 두 사람이 하루키가 소설 집필에 투입한 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퍼부었을 것 같다」며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Literary Hub가 다룬 「Who We're Reading When We're Reading Murakami」라는 서적의 저자인 카라시마 데이빗 씨는 번역과 편집에 대한 몇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스페인어로 쓰인 텍스트를 영어로 옮길 때 번역자는 「적극적으로 수정」함으로써 미국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 일본문학 학자이자 번역자인 마이클 에머리히 씨는 「책의 처음 10%를 올바르게 번역하려면 나머지 90%의  페이지를 번역하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에머리히 씨에 따르면 처음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어떠한 소리로」, 「어떠한 말투로」말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말투」 부분은 일반적으로는 번역자에게 일임되는 경우가 많지만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의 경우는 번역자와 편집자가 함께 조정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교수나 소녀, 사서나 문지기 등 각 캐릭터의 목소리를 각각 표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또 한 가지는 이야기가 2개의 장(하드보일드 원더랜드/세계의 끝)으로 구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일본어 원작에서는 장이 바뀌는 첫 부분에 1인칭이 「와타시(私)」와 「보쿠(僕)」로 구분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어판에서는 「I」로만 처리할 수 있어서 이러한 차이를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번역자인 번바움 씨와 편집자는 이러한 1인칭의 차이를, 다른 시제를 사용하여 각 장의 말투에 차이를 두었고 「원작의 나레이션보다도 적절할 수도 있는, 시대를 초월한 품질」로 훌륭한 번역을 완성했다고 해설했습니다. 

카라시마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글자 그대로 원문에 가깝게 번역해서, 글이 딱딱해졌을 때는 「유동적인 산문」으로 옮겨볼 것을 편집자에게 추천합니다. 카라시마 씨는 이야기에 근접한 번역을 위해서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번역 작업에서 각 캐릭터의 「목소리」를 표현하는데 신경 썼던 점도 참고할 것을 권합니다.   


남코 황금시대의 아케이드 게임을 정리한 전설의 책인 'ALL ABOUT namco'에 담긴 열정. 35년이란 시간을 너머 복각을 단행한 이유를 묻다


필자가 소장 중인 『ALL ABOUT namco』(※1994년에 발매된 재판본). 팬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프리미엄 가격이 붙었던 작품

때는 1985년. 많은 게임팬에게 충격을 선사한 1권의 책이 전파신문사(波新聞社)에서 발행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바로 『ALL ABOUT namco(올 어바웃 남코)』. 본서는 마이콤 잡지인 『베마가』 즉, 『마이컴 BASIC 매거진』의 별책으로  남코(※현재의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의 아케이드용 비디오게임 제1호 작품인 『지비』부터 『메트로크로스』까지 1978~85년까지 등장한 역대 타이틀의 상세한 해설・공략이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케이드 외에 남코의 패미컴용 소프트를 비롯, 전파신문사가 개발・발매한 각종 PC용으로 이식된 남코 게임의 타이틀도 망라했다.
 또한 아케이드 게임의 도트 그림이나 BGM의 악보집, 캐릭터 굿즈까지 풍부하게 게재되어 그 이름대로 남코 게임의 매력을 가득 담은 책으로 누계 기준, 무려 30만부나 발행되었다. 


 본서의 발매 당시에는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케이드 게임의 정보가 활자화된 미디어에 실린 것도 극히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게임센터는 세간에서 「불량아의 아지트」로 한창 비판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당시의 게임팬들 입장에서 본서는 그야말로 바이블과도 같은 존재였다.

 필자가 본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안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책방에서 가격을 확인했더니 당시 용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금액이라  울면서 구입을 포기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본서를 갖고 있던 친구가 있어서 친구집으로 놀러갔을 때 정신 없이 독파하여 게임센터로 가기 전의 예습 차원에서 종종 이용했었다. 제한된 용돈만 쓸 수 있었던 소년시절. 본서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던가... 

 나중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구입한 본서(※정확히는 1994년 재판본)는 지금도 업무용 자료로 소중하게 활용하고 있다.

『제비우스』 공략 페이지 중에서 
. 모든 에어리어의 맵 사진을첨부한 공략법을 해설하고 숨겨진 캐릭터 등의 정보다 빠짐없이 실었다(※필자 소유본을 촬영. 이하 동일)

 게임팬 입장에서는 전설적인 책이라 할 수 있는 『ALL ABOUT namco』의 복각판이 2020년 8월 31일(※선행발매 점포에서는 8월 22일)에 발매된다는 사실이 동사 및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머트 사이트에서 충격적으로 발표되었다. 필자뿐 아니라 1980년대부터 게임센터를 다녔던 분이라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부터 무려 35년 전에 제작된 책이 왜 지금 와서 복각되었을까? 게다가 본서에 실린 게임들은 지금은 일본 전국 어디의 게임센터에 가도 거의 즐길 수 없는 것들 뿐이다. 그럼에도 복각을 결정한 배경에는 뭔가 특별한 의도나 생각이 담겨있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는 초판부터 이번 복각판까지 편집과 제작을 담당한, 전파신문사의 특별고문이며 『전자공작매거진』 및 『마이컴 BASIC 매거  진』의 편집장을 맡은 오하시 타로(大橋太郎) 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코로나 대책으로 인한 원격 취재였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본서의 복각에 대한 다양한 열정이 이쪽 모니터까지 강렬히 전달되어 큰 감명을 받았다. 

 과거의 남코 게임팬이나 『베마가』 독자는 물론, 최근 실황 동영상 등으로 레트로 게임에 흥미를 갖게 된 분들도 꼭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한다. 

취재・글/시바하라 모리유키(鴫原盛之)

전파신문사의 오하시 타로 씨(※본인 제공)

사내에서도 제조사에도 쾌히 승낙을 받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초판이 발매된지 35년이 지난 2020년이라는 시기에서 『ALL ABOUT namco』를 왜 복각하려고 생각하셨는지요?

오하시 씨:
 一가장 큰 동기는 최근 몇 년 동안 도쿄에서 2번, 오사카에서 1번 개최한 「ALL ABOUT 마이컴 BASIC 매거진」【※1】이라는 이벤트가 아주 많은 분들께 호평을 받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야마시타 아키라(山下章) 선생【※2】이 작년부터 준비했고 올 8월에 개최 예정이었던 게임을 사용한 이벤트에 맞춰 내려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 이벤트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중지되었지만요. 

 사실 전부터 「전자판은 언제 나오나요?」라는 문의를 몇 번 받았습니다. 사실 현재 인터넛에서 고액에 거래되고 있고 특히 처음의 큰 것【※3】은 멀쩡한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죠. 단, 복각한다면 전자판이 아니라 종이로, 이전과 가능한 동일하게 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1 「ALL ABOUT 마이컴 BASIC 매거진」
『마이컴 BASIC 매거진』의 전 편집자나 필자 등이 출연한 토크 이벤트. 2015년에 제1회가 개최되었고 2018년에는 도쿄와 오사카에서 1번씩 열렸다. 

※2 야마시타 아키라(山下 章) 선생
현 스튜디오 벤트스탑 대표이사. 『마이컴 BASIC 매거진』의 필자로, 「야마시타 아키라의 레스큐! AVG&RPG」(※나중에 서적판도 발매되었다)등의 명물 코너를 담당. TV 프로그램 『퍼스컴 선데이』에서는 게임평론가로 고정출연한 것으로도 유명. 

※3 최초의 큰 것
1985년에 발행된 『ALL ABOUT namco』의 초판본. 초판은 B5판형이었고 1994년 이후에 재판된 것은 A5판으로 발행되었다. 

──복각하시면서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와의 라이선스 협상은 원활히 진행되었나요? 

오하시 씨 :
 네. 지금은 조금 멀어졌지만 저와 과거의 남코는 30년 이전부터 친밀했었죠. 옛날에는 고탄다(五反田)에서 가마타(蒲田)(※필자 주:두 회사의 사무실이 있던 곳을 의미)까지 오토바이로 하루에 3, 4번 오고간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반다이남코 담당자 분 중에도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셔서 「꼭 해주셨으면 합니다」라며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다른 관계자 분들도 「『ALL ABOUT namco』를 꼭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럼 복각판을 내봐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복각과 관련해서 전파신문사 내 반응은 어땠습니까? 또 기획은 잘 통과되었나요? 

오하시 씨:
 우연입니다만 전파신문사는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이했고  『마이컴 BASIC 매거진』의 모체인 『라디오 제작(ラジオの製作)』도 창간 6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기념할만한 일이 없을까? 의견을 내봐달라」라는 지시를 받아서 이번 기회에 복각을 하는 게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사내에는 이렇게 큰 업무를 경험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 직원들과 깊게 교류하면서 책을 제작하거나 판매측과 협상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복각판 광고를 다음 호  『전자공작 매거진』의 별책에 실었는데 모처럼 광고를 낸다면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유익함을 줄 수 있도록 만들자고 해서 관련 스폰서에 요청했더니 덕분에 광고가 거의 갖춰졌습니다. 
 재미있게도 『ALL ABOUT namco』를 계기로 게임 업계에 들어왔다는 분이 스폰서 분들 중에서 많이 계시더군요. 광고 내용도 꼭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7월 하순에 복각판 출시 소식이 반다이남코와 전파신문사 사이트에서 각각 공개되었는데요 그 후 반응이 어땠습니까? 

오하시 씨:
 처음 반다이 사이트에서 발표되었는데 반응이 엄청나더라구요. 
 담당자 분이 「문의가 엄청나게 쇄도하고 있습니다. 책 잘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셔서 「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저희도 급히 관련 소식을 게재했습니다(웃음).

 많은 분들의 인터넷 글을 보니 이제는 낡아빠진 옛날 『ALL ABOUT namco』 사진이 줄줄이 올라온 거에요.  모두가 같은 사진을 일제히 올리면서 「복각판이 기대됩니다」라고 써주신 걸 보고 아, 역시 종이판으로 내길 잘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잘하게 수정하면서 원본 내용을 충실히 복각

──초판 『ALL ABOUT namco』 제판용 원고는 사내에 계속 보관되었나요?

오하시 씨:
 당시에는 필름으로 남겼었는데 인쇄소 등을 뒤져보니 예전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폐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캔 기술이 아주 발달했고 게다가 소위, 「지스이(自炊)」라는 말처럼 저비용으로 데이터화할 수 있겠지 싶어서 스캔 데이터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

 단, 복각한다면 조금 색다르게 해보자 하고 생각해서 스캔 업자를 물색하다가 고문서라도 능숙하게 스캔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업자분을 신주쿠에서 찾았습니다. 
 작년 말 같은데 우선 제 눈으로 어느 정도의 퀄리티로 완성되는지 확인하려고 실제로 책을 갖고 가서 시범삼아 스캔을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담당자 분이 「저도 이 책을 갖고 있습니다. 꼭 제가 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덕분에 꽤 괜찮은 가격으로 진행해 주신다고 하셔서 「으쌰」と하고 힘이 났죠.(웃음).
 그래도 어느 정도 비용은 들었지만 상당히 퀄리티가 높은, 좋은 상태에서 스캔을 요청하게 되었죠. 


이어지는 내용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정보를 계속해서 읽는 행위인 '둠 스크롤링'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SNS






오후 11시 37분. 생활 패턴이 달라질 징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전 1시 12분이 되었지만 거의 똑같은 상태가 이어진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그러지 않거나 하는 상황뿐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계속 보다가 마음이 어지럽거나 자학적인 기분이 들면 페이스북을 열어본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갇혀 지내게 된 이후, 이러한 밤의 모습은 정형화되었다. 사람들은 하루의 시작에도 끝에도, 확실한 정보를 필사적으로 찾아서 계속 소셜미디어를 스크롤한다.  

『뉴욕타임스』의 테크노로지 칼럼니스트인 케빈 루즈 같이 이렇게 왜곡된 행위의 전도자인 사람들은 이러한 습관을 「둠 서핑(doomsurfing)」이라 부른다. 루즈는 이 행위에 대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콘텐츠로 가득하고, 깊고 병적인 토끼굴에 갇혀서 불쾌함에 지배될 때까지 자기 자신을 불안하게 해서 결국 푹 잠든다는 희망을 모두 제거하는」일이라고 말한다. 이 행동을 모바일 유저들은 「둠 스크롤링(doomscrolling)」이라 부른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중심이 된 뉴스 사이클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항의 데모가 추가되면서 둠 스크롤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뉴스나 소셜미디어의 끊임 없는 흐름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정답」을 찾으며 계속 스크롤하는 사람들

두말할 것도 없이 심야에 화면을 스크롤하는 행동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상담치료를 받는 커플이 상대방에게 가장 많이 호소하는 불만 사항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일요일 밤 하면 침대에서 「왕좌의 게임」에 대한 글을 찾아 트위터를 뒤지거나 풋볼 시합을 감독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보면서 지내곤 했다. 그런데 지금 정주행하는 대상은 오로지 위기에 대한 것과 무너져가는 세계 상황 뿐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미국 내 실업률, 인종간 평등을 요구하며 데모에 참여하는 수많은 참가자들 ──.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데이터는 멈추는 법은 없다. 마치 무한하게 계속되는 드라마 시리즈이면서 앞으로 1번만 더 클릭하면 어떠한 정답이나 뭔가 좋은 뉴스가 나올 것만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간단한 해결책이 없는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실」이 충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시간대학 정보학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소셜미디어를 연구하는 니콜 엘리슨은 「지금 같은 상황에 어떠한 의미를 찾을 경우, 인지 처리(Cognitive processing)라는 측면에서 큰 부담이 발생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를 도와줄, 모든 것을 커버하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를 계속 뒤지는 시도는 이미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엘리슨은 말한다. 

소셜미디어의 부정적인 측면

몇 년 전부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플랫폼의 실질적인 장점이 의문시되었다.  一일부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는 사용자가 책임을 갖고 활용한다면 멘탈헬스에 플러스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소셜미디어로 인해 불안감이나 우울증 상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적어도 FOMO(fear of missing out:고립공포감)를 일으킬 수 있음은 확실하다. 

어쨌든 브런치 사진이나 셀럽의 가십 링크를 너무 많이 보기만 해도 부정적인 증상은 발생한다. 게다가 세계적인 판데믹과 사회불안, 소셜미디어 네트워크가 전 세계에서 트렌드가 되고 있는 토픽을 사용자의 피드에 억지로 밀어 넣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 문제는 더 악화된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면 우리의 시야는 더욱 좁아지고, 절박한, 생존을 지향하는 행동으로 치닫게 됩니다. 『투쟁이냐 도망이냐』 모드로 들어가는 거죠」라고 미시건대학의 엘리슨은 설명한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은 출근해서 커피메이커 주변에서 모이거나 집단으로 상황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셜한 정보 소스가 감소해 버렸죠」

둠 스크롤링이 초래하는 나쁜 영향

하지만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 꼭 미디어 때문만은 아니다.  

하버드대학 공공위생대학원의 「건강과 행복센터」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를 맡고 있는 메스핀 베카루에 따르면 많은 뉴스가 나쁜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 인간은 나쁜 뉴스에 주의를 기울이는 “본능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고 말한다.  

이것이 소셜미디어의 알고리듬과 연동되면 둠 스크롤링과 그로 인한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미 1970년대에 세계가 실제 상황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잔혹한 세계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이라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이는 TV로 폭력적인 내용의 프로그램을 장시간 시청해서 발생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라고 베카루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둠 스크롤링도 멘탈헬스에 그와 비슷한 장기적인 영향을 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개입해서 사용자의 행동에 대처하여 소셜미디어의 구조를 멘탈헬스와 웰빙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흑인 입장에서의 둠 스크롤

둠 스크롤링의 영향은 그 행동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남캘리포니아대학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학부의 조교수인 앨리사 리처드슨이 자신의 저작을 위해 연구를 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자신이 취재한 많은 활동가가 둠 스크롤링에 빠져 있음을 파악했다. 그 이유는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속에서 자신의 자아가 수없이 살해당하는 상황을 잠자코 보고 있을 수 없다」라는 심플한 것이었다. 

소셜미디어를 지나치게 이용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라고 리처드슨은 지적한다. 그렇기에 많은 흑인 유저가 그에 대한 항의 의사를 밝히는 의미에서 흑인이라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소셜미디어에 눈을 돌린다. Instagram Live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배틀인「Verzuz」는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사례이다.  

「흑인들 사이에서 둠 스크롤링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흑인들은 나쁜 것과 구분된, 거리감 있는 “무엇인가”를 깊게 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리처드슨은 말한다. 「흑인 이외의 미국인 입장에서 둠 스크롤링은 아주 풍요로운 시간입니다. 즉, 둠 스크롤링이란 잘 몰랐던 사실이나 어렴풋하게 느꼈지만 무시했던 것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 한때이니까요」

계속해서 악화되는 협박 관념

어떤 면에서 끊임없는 클릭에는 좋은 점도 있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락다운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화제의 중심이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인종간의 평등이나 「Black Lives Matter」로 이동함에 따라 소셜미디어는 적극적인 사회 참가의 도구가 되었다. 판데믹에 대한 최신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단순한 포럼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항의 데모와 보석금 기금,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뉴스를 확산하고 있다.  

그래도 늦은 밤까지 계속 정보를 파고들거나 나쁜 뉴스를 보는 행동은 사용자를 피폐하게 만든다. 게다가 데모 참가자의 신원이 다른 사용자의 피드로 확산되면 관련 인물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리처드슨은 지적한다. 

이러한 강박관념은 최근 몇 달 동안 더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대처 메카니즘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찾고 싶어 한다는 상황도 알 수 있다. 

둠 스크롤링의 어원을 확인해 보면?

이러한 둠 스크롤링은 계속되고 있다. 이 단어의 기원은 확실치는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2018년 1월에 올라온 트윗이 아닌가 추정된다. 최근에는 메리엄 웹스터 사전의 「주목할 단어」 중 하나로「둠 스크롤링」이 선정되었다.「Dictionary.com」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단어」 중 하나로 「둠 스크롤링」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어원에 관한 이야기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요점은 「둠」이라는 단어다. 원래 이 단어에는 「최후의 심판의 날」이나 「세계의 종말」과 관련된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파괴」나 「파멸」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둠 스크롤링이란 단어는 「파멸」을 향해 「굴러간다」라는 의미가 된다. 혹은 소설가인 조앤 디디온의 말을 빌리자면 「마지막 일격에 대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경에 관련지어 생각하면 「요한의 묵시록」과 같은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손가락으로 타임라인을 스크롤 할 때마다 세계 전체와 사람들 입장에서 「최후의 심판의 날」이 끝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종언을 맞이하는 모습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라보면서 각각 천천히 스스로 무너져 간다(이러한 심판이 밀어닥치는 행위는 너무나 많은 유명인사들이 과거의 말과 행동을 비난받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디디온은 1960년대에 지은 에세이를 정리한 『Slouching Towards Bethlehem』의 제목을 W.B. 예츠의 시 「재림」에서 인용했다. 이 시는 1차 세계대전의 파괴에 대한 것으로 스페인독감이 크게 유행한 1918년에 쓰여졌다. 「세계의 스크롤링」이 이렇게 작가나 시인을 통해 묵시록과 같은 비전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둠 스크롤링이 파멸 그 자체를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정보를 알았다는 것은 우리를 위로해 줄 수는 있지만 비극에 압도당했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올해는 정말 마라톤 같은 해다. 피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모두 보려고 했다간 체력을 모두 잃거나 멘탈헬스가 악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평정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 즉 당신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고통과 격리, 파괴 속에서 매일밤 트위터를 2시간이나 쓸데없이 보면서 무거운 짐을 늘려본다고 한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종말」이 필요한 것은 당신의 타임라인이지 않을까?  


드래곤퀘스트는 RPG에 대한 역풍 속에서 탄생했다――“드퀘 이전”의 일본 RPG 역사를 통해서 보는 고난의 역사 게임S/W관련


 『드래곤퀘스트』(에닉스・1986)는 어떻게 탄생했나? 그에 대한 대략적인 모범 답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一첫 번째는 「『위저드리』(Sir-Tech・1981)와 『울티마』(오리진・1981)의  “뛰어난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모두 1981년에 발매된 해외 컴퓨터 RPG(이하 CRPG)다. 위저드리에서는 적 몬스터와 대면해서 커맨드를 선택하는 턴제 전투를, 울티마에서는 탑 뷰 시점에서 광대한 세계를 여행하는 탐색을 도입한 “혼합형”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해설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 않는다.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크게 히트했으며 그 후에도 시리즈가 계속 나온 메이저한 작품으로 다른 게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게임 업계 전체를 흔들었으며 그 여파를 받지 않은 게임이 오히려 적을 정도다.  
 실제로 드퀘에 앞서 위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가졌고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지만 게임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기지 못한 소프트도 있었다. 양대 CRPG의 유전자를 계승한 수많은 게임 중에서 드퀘는 어떻게 부각되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위해서는 당시의 드퀘를 둘러싼 CRPG 시장과 그에 도달한 역사도 함께 고찰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답안은 「호리이 유지 씨나 나카무라 코이치 씨토리야마 아카라 씨, 스기야마 코이치 씨 등 여러 능력자가 모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이것도 충분치는 않다. 천재의 집합은 빼놓을 수 없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드림팀으로 기대를 받았던 프로제트가 스태프들 간의 개성이 충돌하여 실패하는 사례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체 드퀘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결론을 말하자면 드퀘는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좋은 점을 도입했다」가 아니고 오히려  『위저드리』와 『울티마』를 「잘 편집했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만화편집자 경력을 가진 호리이 유지 씨의 경력이 영향을 주었음은 자명하다. 

 본 연재에서는 우선 초대 드퀘가 어떻게 탄생했나를 검증한다.  이번 1회에서는 CRPG가 걸어온 시간 속에서 초대 드퀘에 이르는 길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변천했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주로 미국의 많은 능력자들이 재능을 발휘하여 CRPG를 통해 발전한 상상력과 게임 시스템이 일본의 패미컴 게임에 계승되기 직전까지를 검증하겠다. 

「D&D」에서 탄생한 CRPG

 현재 일본에서 「검과 마법의 판타지」가 게임뿐 아니라 라이트노벨에서도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현상은 드퀘가 대성공하면서 하나의 스탠다드가 된 덕분일 것이다.  
 그럼 드퀘는 「검과 마법」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앞서 언급한 『위저드리』와 『울티마』로부터 왔다, 라는 사실은 호리이 씨 인터뷰 외에 작품의 탄생에 공헌한 토리시마 카즈히코 씨의 증언으로도 뒷받침된다. 

토리시마 씨:
 먼저 나카무라 씨와 호리이 씨가 팀을 이룬다는 것만 정해졌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 사이 유행했던 『위저드리』나 『울티마』같은 RPG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하지만 아까 말했지만 『위저드리』는 세계관이나 전투는 재미있지만 필드나 던전은 단조로워서 별로였습니다. 반대로 『울티마』는 전투는 재미없지만 필드나 던전은 재미있었어요. 이건 함께 밤을 새며 즐겼던 호리이 씨도 동의하는 바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좋은 점을 갖고옵시다」라고 확인했더니 그분들도 「저도 그럴 작정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결국 저는 편집으로 움직이기만 했습니다. 

 

【全文公開】伝説の漫画編集者マシリトはゲーム業界でも偉人だった! 鳥嶋和彦が語る「DQ」「FF」「クロノ・トリガー」誕生秘話より引用

 그런데 이 두 게임의 원류를 거슬러올라가면 동일한 한 작품에 도달한다. 『던전&드래곤』(이하 D&D )(Tactical Studies Rules・1974)——현존하는 모든 컴퓨터 RPG의 시조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불문하고  「판타지 유희」가 널리 진화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한 근본적인 “씨앗“과 같은 존재다. 

『Dungeons&Dragons』(Wikipedia)より

 1974년에 탄생한 D&D는 원조 테이블토크 RPG——인간 플레이어끼리 모여 게임 마스터의 사회와 진행 아래 시나리오를 즐기는 보드 게임이다. 그 원점은 1950년대~197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유행했던 워게임. 종이 보드 위에 말을 놓고 즐기는 전쟁 보드 게임이다. 
  TRPG 업체 중 하나였던 TSR은 1971년에 『체인메일』(Tactical Studies Rules・1971)이라는 중세 유럽을 무대로 한 워게임을 발매했다. 이전 제품과의 주된 차이는 유닛을 「부대」에서 「개인」으로 바꾼 점이었다. 그에 부속된 판타지 설정인 지하미궁이나 성의 탐색 등의 시나리오를 즐겨보니 이게 재미있었다. 이윽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다」하는 내용을 추가한 결과, 완전히 판타지 설정으로 수정되어 D&D가 발매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게임 마스터 1명이 진행자 역할을 맡고 여러 플레이어가 역할을 연기한다ーー라는 테이블 토크 RPG의 기본 형식은 전투에 특화된 『체인메일』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D&D는 탄생과 동시에 게임 마스터를 통해서 「이야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D&D는 그 후 크게 성공하여 청소년에게 나쁜 역향을 준다는 사회적 눈총을 받다가 미국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시작의 조짐이 있었던 컴퓨터 게임 창작의 움직임과 합류했다. 『위저드리』나 『울티마』의 장르 명칭인 CRPG란 대충 요약하면 여러 명이 모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D&D」로 「컴퓨터로 즐길 수 있는 테이블 토크 RPG」인 것이다. D&D는 수많은 CRPG의 마중물이 되었다.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탄생

 D&D의 후손들이 발전하는 가운데 1981년은 큰 전기가 찾아온 해였다. 드퀘의 원형인 양대 CRPG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발매된 것이다. 
 두 게임 외에도 뛰어난 CRPG는 있었지만 「상용 게임」으로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학술기관이나 지인 서클이란 범위 내에서만 플레이한 게임은 바다 건너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법이다.   

 호리이 유지 씨가 열심히 즐겼던  『위저드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우드헤드 씨도 PLATO(미국의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상에서 실행되던 짐 슈바이거라는 개인이 제작한 『우블리엣(Oubliette)(1977)이란 CRPG에 빠졌다. 

 이 게임은 3D 1인칭 시점에서 던전을 탐색하거나 다른 직업을 조합해 파티를 편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ーー『위저드리』는 일부 사람들이 독점했던 『우블리엣』이란 CRPG의 재미를 개인용 PC인 AppleII로 “이식”한 것이다. 낮은 스펙의 당시 PC로 대형 시스템의 게임을 가능하도록 재현한 기술은 물론 위대한 업적이다. 

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Wikipedia)より

 『위저드리』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요소는 역시 一1인칭 시점(화면 상에 자기 캐릭터가 없다)으로 탐색하는 3D 던전일 것이다. 상대편 적도 「정면에서 마주치게」 되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 모습이 표시된다. 방금 전까지는 낌새도 없던 마물이 갑자기 나타나는 랜덤 인카운트도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모험은 혼자가 아니라 6명까지 파티를 짠다. 캐릭터는 전사・마법사・승려・도적 등의 「직업」과 인간・엘프・드워프 등 「종족」과 조합되며 종족에 따라 맞는 직업, 그렇지 않은 직업이 있다. 선・악・중립이라는 「속성」도 있어 선과 악은 같은 파티로 편성할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선 또는 악이 요구되는 직업도 있어 고민 거리였다. 
 또한 마법 시스템에도 독자적인 문화가 숨쉰다. HALITO(1개체 공격)/MAHALITO(그룹 대상 공격)이나 DIAL(1개체 회복)/DIALKO(마비 회복) 등 동일한 체계의 마법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한다. 이것은 드퀘의 「호이미→베호이미」 등 주문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울티마』는 발상의 원점부터 개발자인 리차드 게리엇 씨가 거의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개리엇 소년이 만든 게임 「D&D #1」이다. 개리엇 소년은 그 후 AppleII로 환경을 옮겨 버전업을 거듭해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79년에 CRPG 『아칼라베스』를 완성시켜 3만 장의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것을 더 가다듬은 제품이  『울티마 1』이다. 

Ultima I: The First Age of Darkness(Wikipedia)より

  『울티마 1』이 나중에 등장한 CRPG에 영향을 미친 특징은  탑 뷰 화면의 광대한 2D 맵이다. 인도어(지하)인 『워저드리』에 비해 『울티마』는 아웃도어였다. 1칸이 산 1개에 해당하는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므로 걸을 때마다 식량을 소비한다. 이렇게 굶어죽는 일이 게임오버로 이어지는 사양과 2D 맵과 함께 따라서 적용한 CRPG도 적지 않다. 
 『울티마』의 2D 맵과 『위저드리』의 3D 1인칭 시점 던전+마법체계(나중의 시리즈에서는 파티+직업도)——이 유전자를 계승한 드퀘는 좀 더 나중에 탄생하게 된다.  


이어지는 내용

예전에 플레이했던 「Windows 3D 핀볼」을 Windows 10에서 즐겨보자~ 게임S/W관련



 Windows 95 확장팩부터 Windows XP까지 수록되었던 Windows 3D 핀볼 Space Cadet(Windows 3D 핀볼)은 도시경영 시뮬레이션인 「심시티」시리즈로 유명한 맥시스가 개발한 핀볼 게임입니다. Windows 기본 내장 게임으로 솔리테어, 지뢰찾기와 함께 인기를 끌었지만 Windows Vista 이후에는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팬들 덕분에 Windows 10에서도 Windows 3D 핀볼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Microsoft Pinball For Windows Vista&7 - Home
https://web.archive.org/web/20130127144603/https://mspinball.weebly.com/index.html


Microsoft Pinball for Windows 7/10 Download - TechSpot
https://www.techspot.com/downloads/5697-microsoft-pinball-for-windows-vista-7.html


오리지널 배포 사이트는 사라졌지만 인스톨러를 포함해 인터넷 아카이브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인터넷 아카이브에 있는 아래 배포 페이지에서 「MSI Installer For Windows Vista&7 (32&64 Bit)[1.33 MB]」를 클릭하고 인스톨러를 다운로드합니다. 인스톨러는 EXE 형식이며 용량은 1.33MB입니다. 또 「Microsoft Pinball For Windows Vista&7」도 있는데요, Windows 10에서도 설치 가능합니다. 

Download - Microsoft Pinball For Windows Vista&7
https://web.archive.org/web/20130129063750/http://mspinball.weebly.com/download.html



이제 다운로드한 「3d_pinball_for_windows_space_cadet.exe」를 실행해 보죠. 



「Install」 버튼만 누르면 설치 끝입니다~



역시 설치가 금방 끝났군요. 단축키를 이용해 Windows 3D 핀볼을 실행해 봅시다. 


이런 화면이 표시되었다가……



Windows 3D 핀볼이 실행됩니다. 



Pinball FX3나 Pinball Arcade 등 요즘 나온 PC용 핀볼 게임과 비교하면 동작이 부드럽지 않지만 간편히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Windows 3D의 특징입니다.  그렇지만 독특한 움직임 때문에 난이도는 높은데요, 오랜만에 플레이해봤더니 121만 7000점의 스코어에 그쳤습니다. 게임 기록을 정리하는 사이트인 Video Games Records에 따르면 이 기사를 작성하는 시점에서 최고기록은 4억 1915만 7150점이었습니다.  


조작 키 배치를 확인하려면 윈도우 윗 부분에 있는 메뉴 바에서 「Options」을 클릭하고「Player Controls」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디폴트 설정은 「Space」가 볼 쏘기, 「z」가 왼쪽 플리퍼, 「/」가 오른쪽 플리퍼, 「X」가 테이블 흔들기(왼쪽), 「.」가 테이블 흔들기(오른쪽), 「↑」가 테이블 흔들기(정면)입니다. 물론 원하는 대로 키 배치를 바꿀수도 있습니다. 



또 디버그 모드를 통한 커맨드 조작도 가능합니다. 어떤 커맨드가 있는지는 아래 기사를 참조하세요. 

Windows付属ピンボールのボールをマウスで動かす裏コマンド - GIGAZINE



Windows 3D 핀볼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이나 공략은 아래 사이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解析3Dピンボール - Space Cadet
http://www.kazamit.com/3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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